삼성 간부들은 사석에서 한결같이 답답함을 토로한다. 요즘 삼성이 뭘 하는지 모르겠다 고들 한다. ‘그룹’은 없고 ‘기업’만 남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저 버티고 있을 뿐, 각개약진도 아니고 기능적 분권화도 아니라고 한다. 무기력을 넘어 무중력 상태라고 개탄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도 책임지고 나서지 않는다. 자리도 없고 인물도 없다. 김용철의 폭로와 삼성 특검에 대응해 ‘회장 퇴진’을 해법으로 채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삼성은 뒷수습을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전략의 실패’라는 측면에서도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삼성은 오너십 승계의 단추를 한번 잘못 꿴 이후 10여년간 늘 수세적이었다. 피해가기 급급했다. 적당히 용서를 구했다. 사과하고 헌납하고 퇴진했다. 요컨대 삼성의 오너십 전략은 ‘소프트 랜딩’ 이었다. 충돌을 피하고 몸을 낮춰 이해를 구하자는 쪽이었다.
결과는 실패다. 이제 보수적인 삼성의 브레인들도 실패를 인정할 때가 됐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삼성을 둘러싼 피아(彼我)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회장이 물러났는데도 ‘반(反)삼성’은 그대로 ‘반삼성’이다. 그들의 눈총을 벗어나는 길은 1등의 자리에서 내려와 별볼일 없는 기업으로 전락하거나, 노조설립을 용인하고 오너 지분을 통째로 국가에 헌납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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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한번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된 것 아닌가. 소프트 랜딩을 시도한지 10 여 년, 아직도 랜딩기어를 내리지 못했다면 이제 동체착륙을 고민해볼 일이다. 최악의 경영환경이니 비장한 각오야 당연히 가슴에 품어야할 것이고, 오히려 지금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잡을 기회일 수도 있다.
대중들이 스캔들을 잊을 때까지 또 마냥 기다리자고? 그 조심성이 자칫 대책 없는 소심함으로 이해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더 이상 활주로 상공을 맴돌기에는 시절이 너무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