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사교육' 수출하자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김지민 기자 2009.03.3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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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일자리, 서비스업에 있다 1부-①]

- 특유의 경쟁력 해외서도 인정
- 대표적 서비스 수출상품 가능
- 美 온라인학교 K12 좋은 모델

"엄연히 존재하는 사교육을 부인하는 것보다 베드로가 예수를 3번 부인하는 게 더 쉽겠다"

학원광고에 출연해 논란을 빚은 가수 신해철씨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같은 글을 올렸다. 신씨는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학교는 때려치우고 학원만 다니겠다"는 글로 공교육을 신랄히 비판했다. 문제의 핵심은 공교육이지 사교육이 아니라는 항변을 특유의 독설로 풀어낸 것이다.



신씨의 지적대로 문제는 공교육이다. 정부도 "공교육이 정상화돼야 사교육비를 잡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지난 20년 가까이 공교육 정상화를 외쳐왔지만 여전히 공교육은 정상화되지 않은 듯 공교육 정상화 구호는 계속된다.

'한국식 사교육' 수출하자


사교육은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긴다. 공교육은 아무리 엉망이라도 '의무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유지된다. 반면 사교육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외면하면 2~3개월을 버티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교육 규모가 해마다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공교육에 문제가 많거나 아니면 공교육 영역에서 소화할 수 없는 배울 것이 많다는 의미다.



이는 대안학교의 증가추세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대안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현재는 미인가 학교까지 포함하면 100곳이 넘는다. 미국도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심각해지면서 공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홈스쿨링 학생만 2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수영 아발론 입시전략연구소장은 "공교육시스템이란 산업혁명 때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한꺼번에 많이 배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미래 사회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것이 학교라고 예견했듯 홈스쿨링과 사교육의 증가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비난의 화살은 늘 사교육에 집중돼왔다. 공교육은 메스를 들이대면 교원단체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지만 사교육은 크게 저항이 없다. 책임을 떠넘기기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 사교육이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출범 후 첫 사교육비 대책이 학원가 특별단속이었다. 지난달 발표한 2번째 대책 또한 사교육을 공교육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사교육 없는 학교 1000곳 만들기'였다.

그러나 한국처럼 사교육을 '독버섯' 취급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어떻게 하면 낮은 교육열을 끌어올릴 것인가가 숙제인 외국 지도자들에게 한국의 사교육 인프라는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다. 제3세계 신생독립국 중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를 한번이라도 달성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고 그 힘이 교육열에서 나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교육열을 언급했다.



미국도 한국처럼 공교육의 질저하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만 사교육을 죄악시하지는 않는다. 공교육 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사교육을 공교육과 접목하는 작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2000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설립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까지 상장된 K12가 대표적이다.

K12는 대안학교의 일종인 '차터스쿨' 형태의 가상학교(Virtual School)다. 개교 첫해에는 학생이 1000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7만명 넘는 학생이 K12를 통해 유치원(K학년)부터 고등학교(12학년)까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받아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로 학교졸업장을 따고 있다.

미국정부는 K12의 졸업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준다. K12를 통해 학부모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공립학교에 자녀를 계속 보내지 않아도 돼 좋고 주정부는 기존 홈스쿨링이 가졌던 학력 저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 좋았다.



대인관계와 협동심이 결여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K12 모델은 23개주로 확대됐고 매출액도 2007년 1억4060만달러(약 2250억원)에서 지난해 2억2620만달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교육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지난해에는 미국 정규수업에 대한 수요가 큰 한국 러시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에 수출도 시작했다. 

고봉익 TMD교육그룹 대표는 "미국은 공교육의 절반을 사교육업체 등에서 제작한 e-러닝으로 전환하고 교사들은 취약한 과목만 개별 지도하는 쪽으로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결국에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새로운 학교모델을 제시하고 교육을 수출상품으로까지 만든 K12의 사례는 한국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은행의 국민소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의 교육비 규모는 39조8771억원에 달했다. 약 40조원이면 전국 2만여개 유치원, 초·중·고의 올해 전체 예산(33조2797억원)보다도 많은 규모다. 고등교육 전체 예산(4조7792억원)만 따지면 8배가 넘는다.



그 흔한 '육성대책' 한번 없이도 사교육시장은 어느새 공교육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게다가 한국식 사교육은 미국과 중국 등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다.

최진영 디지털대성 사장은 "한국의 사교육시장 규모는 게임시장의 6배에 달하지만 그동안 한번도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한국의 남다른 교육열과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성장을 계속해온 사교육업체의 경쟁력이면 한국의 대표적인 서비스 수출상품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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