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노사민정 대타협…'반쪽' 우려도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2009.02.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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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11년만..세계서 첫 합의 주목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비상대책회의)가 23일 전문과 64개항의 본문으로 구성된 노사민정 합의문 도출에 성공했다.

이번 합의는 노사민정이 모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타협을 이뤘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한국 역사상 경제위기로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진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2월 이후 두번째 있는 일이다.

당시 대타협이 정부 주도로 이뤄진 반면, 이번 대타협은 노사단체가 먼저 대타협을 제안해 한축 성숙된 합의란 평가다. 합의 주체도 노사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민 단체, 종교계, 사회원로 등 민간 부분으로 확대됐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주목된다.

김대모 비상대책회의 공동의장은 "우리사회 각계각층이 두루 참여해 포괄적이고 실질적 합의를 이뤄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번 합의문은 국민 전체의 합의로 봐도 괜찮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번 합의문에서 사측은 인위적 감원을 자제하고 현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도록 노력키로 했다. 대신 노측은 파업 자제, 임금 동결 및 반납, 삭감 등으로 경영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화답했다.

정부는 이를 실천한 노동자와 기업에 세제 지원을 약속하고 실업급여 및 퇴직금 산정시 절감 전 임금을 기준으로 삼도록 하는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놨다.

합의는 '난산'이었다. 정부 예산확충 규모와 임금 삭감 등의 내용을 놓고 이해 주체 간 입장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아침까지도 산별 대표자 회의를 하며 합의문 초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임금 삭감' 부분. 결국 노사는 임금 삭감 대신 '임금 절감'이란 용어를 절충안으로 타협을 이뤘다. 그만큼 현 경제위기가 남다르다는 데 노측도 동의, 일정부분의 고통분담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무급휴직 등으로 근로자 실질임금이 줄어든 상황에서 임금 삭감이 퇴직금과 향후 연봉협상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삭감'을 포함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자진 반납 형식으로 처리, 퇴직금을 임금 삭감 전의 수준으로 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안을 제시해 마지막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이세중 공동의장은 "어느 일방의 강요가 아닌, 함께 일자리를 나누고 양보하자는 뜻이 담겨있다"며 "용어 차이가 있는 것이지 고통을 나눈다는 의지는 같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주요 쟁점사항으로 한국노총이 일자리 유지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요구한 32조원 규모의 재정 투입은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단계에 있어 규모를 미리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받아들여졌다"며 "관련예산이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합의문에서 실질적인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노총이 빠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노조가 망라된 금속노조와 전교조, 보건의료산업 노조 등 강성 노조가 모두 민주노총 산하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실질적인 고통분담 없이는 반쪽짜리 합의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높다.



민주노총은 "노사 고통분담이 공정히 이뤄지려면 노동시간 단축이 중심이 되고 단축된 임금삭감분에 대한 공정한 노사정 분담이 필요하다"며 "이번 합의는 노동자에 고통을 전담할 뿐 아니라 대표성도 없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혹평했다.

이번 합의문이 한국노총 산하 개별 사업장에서 실질적으로 얼마나 구속력을 가질지도 미지수다. 노조는 '경영이 악화됐을 경우'로 한정해서 임금 절감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지만 사측이 '경영이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서' 임금 삭감을 요구할때의 기준은 제각각 일 수 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도 "경영 여건이 어려운 사업장에 한해 임금을 동결, 일시적 반납이 가능하고 나아가 일자리 나누기를 할 때 절감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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