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훌러덩 부장님 "오빠라고 불러"

머니투데이 박희진 기자 2009.02.1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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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생존백서-아찔했던 순간]16회. 성희롱 대처법

머리 훌러덩 부장님 "오빠라고 불러"


남녀칠세부동석. 일곱 살만 되면 남녀가 한 자리에 같이 앉지 않는다는 유교의 옛 가르침이다. 남녀가 엄격히 구별돼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내외'는 옛말이 된지 오래다. 남녀간 '공존'은 그야말로 일상이다. 남녀가 동고동락해야하는 회사 생활이야 말해 무엇 하리.



물론 남녀공학이 대부분인 대학 때부터 이성과의 접촉은 일상화된다. 그나마 캠퍼스에는 '핑크빛 로맨스'가 싹트기도 하지만 사회엔 '우울한 성희롱'이 도사리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성희롱 문제는 때로 아찔한 로맨스로 그려지지만 성희롱 문제는 신입 사원이 흔히 겪게 되는 '비정한 현실'이다.



성희롱 문제는 대학내에서도 '이슈'인 만큼 충분히 숙지된 경우도 많다. '비판적 지성'이 꿈틀대는 캠퍼스에 성희롱 문제는 대자보에 걸린 단골메뉴였다. 그러나 사회에는 '권력관계'의 함수가 복잡해지면서 성희롱 문제도 차원이 복잡해진다. 물론 과거에 비해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면서 상황은 많이 나아졌지만 직장내 성희롱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최근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 2명 중 1명이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직장인 729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52.3%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회식자리를 제외하고 평상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이 있다고 밝힌 비율은 39.1%.

성희롱을 가했던 상대는 51.2%(복수응답)가 '직속상사'를 꼽았다. 이어 'CEO 등 임원급'(35.4%), '동료'16.5%), '기타'(9.4%), '거래처 직원'(7.9%) 등의 순이었다.


성희롱의 유형으로는 어떤 게 꼽혔을까. '포옹 등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74%, 복수응답)이 1위를 차지했고 '성적인 야한 농담'(41.7%), '몸매 , 외모에 대한 비하 발언'(30.7%), '술시중 강요하는 행동'(26.8%), '노골적인 시선'(15.7%) 등이 있다.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 어렵다는 통역대학원에 당당히 합격, 통역사의 꿈을 이룬 C씨.



첫 직장으로 유명 외국계 은행에 입사했다. 잘나가는 '커리어우먼' 이미지에 딱 맞는 그녀는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현장에서 직접 겪게 된 통역 업무는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지만 어려운 금융 용어와 각종 힘든 상황을 이겨내며 업무에 적응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통역은 지원 업무로 각종 회의를 주관하는 다양한 부서와 함께 일을 하게 되는데 하루는 OO팀의 통역 업무를 맡게 됐다.

C씨는 당시 맡은 문제의 사안이 중대해 평소보다 더욱 긴장하며 통역 업무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회의 직전까지 이런 저런 서류를 꼼꼼히 챙기는 C씨에게 해당 팀 부장님이 다가와 커피 한잔을 건넸다. C씨는 그 부장님이 바쁜 상황에 커피까지 챙겨주니 내심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보다 좀 더 상기된 목소리로)어머 부장님, 커피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

그랬더니 머리가 훌러덩 벗겨진 40대 후반의 부장님 왈.

"(느끼한 목소리로)OO씨. 앞으론 오빠라고 불러."



"(오..오..오빠..)"

그 순간 C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오빠라는 말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 했다.

배울 만큼 배운 이 지각 있는 중년 남성분의 입에서 부하 여직원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주문하다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건 홍길동의 비애거늘 회사에서 부장님을 오빠라 부르라니.



C씨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속에선 화가 끌어 올랐다. 예정대로 회의는 시작됐지만 그날 C씨의 귀엔 영어대신 '오빠' 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한 H씨. 모든 게 낯선 첫 사회생활이라 가뜩이나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게다가 업무량까지 엄청나 H씨의 직장생활은 그야말로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주로 외부 업체들의 아웃소싱 광고 업무를 맡다보니 일도 많고 전체 직원 수도 10여명 남짓한 작은 규모라 H씨에게 떨어진 일이 너무 많았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것은 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을 해야 했다.



그날도 여느 날도 다름없이 철야 근무 중이었다. 커다란 컴퓨터를 앞에 두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기며 디자인 일을 하고 있는데 H씨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잡혔다. 근처 어딘가에서 나오는 야릇한 소리였다.

정체불명의 소리에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이내 '근무 모드'에 돌입한 H씨. 잠시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에서 일어난 H씨는 그 소리의 정체를 알고 까무러치게 놀랐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팀장님이 컴퓨터로 보고 있던 '야동'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H씨가 자신의 컴퓨터 앞을 지나가도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야동을 '즐감'했다.



팀장의 '야동폭력'은 더욱 과감해졌다. H씨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직원들의 이목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대놓고 즐기는 모양이었다. 주변 여직원들이 느끼는 불편한 기분만 이루 말 할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여자들이 주 피해자지만 그렇다고 성희롱 문제가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여자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면서 남자 직원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직원이 대부분인 은행 지점의 경우 남자 직원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총각' 신입 직원이 '딱' 걸리는 경우가 있다.

입사 2개월 차 K씨는 하루에도 최소 10번은 안마를 '당'한다. 받는 게 아니라 당한다가 맞다. 지점내 30~40대 소위 '아줌마' 직원들이 화장실 갈 때 한번, 올 때 한번 "피곤하지 우리 총각 계장. 내가 피로 풀어줄게~"하며 어깨에 올린 손은 이내 손목까지, 때로는 가슴까지 내려간다.

회식 날 노래방서는 '접대부'가 따로 없다. 아줌마들과 돌아가며 블루스에, 불쑥 등장하는 아줌마의 입술에 살 떨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하루는 만취한 '누나'한테 잘못 걸려 노래방에서 양복바지가 내려가 얼굴이 빨개진 기억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장내 성희롱은 다반사다. 반면 '대응'은 여전히 제한돼 있는 게 현실이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의 조사 결과에서도 대응 방법에 대한 질문에 '그냥 넘어갔다'고 답한 경우가 51.2%에 달했다.

다음으로 ‘명확히 거부의사를 밝혔다’(22.8%), ‘동료에게 알려 공동으로 대응했다’ (6.3%), ‘가해자보다 상급자에게 보고했다’(5.5%), ‘개인적으로 만나서 사과를 요구했다’(0.8%) 등의 의견이 있었다.



대응 없이 그냥 넘어간 응답자(195명)에게 그 이유로 ‘대응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33.8%)를 가장 많이 택했다. 이 외에도 ‘내가 잘 피하면 되기 때문에’(18.5%), ‘업무상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 (12.3%), ‘다들 참고 있어서’(7.7%), ‘상대가 나이가 많은 연장자라서’(7.7%) 등을 꼽았다.

성희롱을 가한 당사자가 처벌이나 징계를 받았는지 묻는 질문에는 5.5%가 '예'라고 대답했다. 특히 동료에게 알려 공동 대응하거나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경우도 29.4%만 처벌 또는 징계를 받았다고 답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아직까지 미흡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담당부서나 담당자가 있는 곳은 24.7%에 그쳤다.

물론 성희롱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높아지고 의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회사에서도 자체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성희롱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상대적인 문제'지만 성희롱은 반드시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한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 느낄 경우엔 우선 가해자에게 거부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거부의사를 직접 표현하기 어려우면 불쾌한 표정을 짓거나 즉시 그 자리를 피하는 것도 방법. 직장내 고충처리상담센터 등 공식적 루트를 통한 문제해결 요구도 필요하다. 직장내에서 자체적으로 성희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관할노동부의 고용평등위원회, 여성특별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구제절차를 밟을 수 있다.

김성자 뉴코아 CS팀 과장은 “성희롱 피해시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항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장 내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나 가벼운 신체 접촉도 상대로 하여금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직장인 모두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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