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동성 함정' 이미 시작"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9.02.09 08:02
글자크기

금리 내리고 돈 풀어도 소비·투자 위축

- 12일 금통위 금리 조정 폭에 관심 집중

한국경제가 이미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은행은 "아직 통화정책이 무력화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정도의 문제일 뿐 사실상 '유동성 함정' 국면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유동성 함정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통화량을 늘려도 회사채 및 대출금리 등 시중금리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 금리·통화정책이 효력을 잃은 상태를 의미한다.



한은도 유동성 함정을 경계한다. 이에 따라 당장 12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조정에 관심이 쏠린다. 시장에서는 0.5%포인트 추가 인하를 기대하지만 유동성 함정에 대한 판단이 폭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국 '유동성 함정' 이미 시작"


◇"유동성 함정 이미 시작"=한은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 후 기준금리를 5.00%에서 2.50%로 낮췄다. 또한 시중에 외화 279억2000만달러(37조4000억원), 원화 22조7000억원 등 모두 60조6000억원을 풀었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기업어음(CP) 등 단기채 금리는 기준금리에 맞춰 동반 하락했지만 회사채 금리는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3년만기 'AA-급' 우량 회사채 금리는 지난해 10월 7.75%에서 이달 6일 7.37%로 겨우 0.38%포인트 떨어졌을 뿐이다.

소비와 투자는 계속 위축될 조짐이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재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7.0% 줄어 4개월 연속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24.1% 급감했다. 큰 폭의 금리인하에도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이미 유동성 함정이 시작됐다는 근거로 읽힌다.

◇엇갈린 시각=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은 8일 "유동성 함정은 한국뿐 아니라 각국이 안고 있는 공통된 우려"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 및 실물경제 위축에 따라 돈이 잘 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며 "현재 글로벌 위기는 구조적이어서 유동성 함정을 피해갈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분석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도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으로 진단하면서 "부동자금이 원활히 흐르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경기상황이 워낙 불투명해 여의치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은 고위관계자는 "글로벌 충격에 따라 유동성 함정에 가까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맞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에 빠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동성 함정은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시장금리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 국한해야 한다"며 "통화정책이 (미미하지만) 아직은 시장금리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채나 다른 장기채의 금리수준을 감안할 때 한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은은 유동성 함정을 정책금리와 시장금리간 관계에 한정해 파악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소비, 투자, 생산 등이 급격히 위축되는 상태에서 시중금리만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이라고 우려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