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첫날 펀드창구엔 '기자만 북적'

박성희 도병욱 기자 2009.02.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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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펀드판매 리허설 많이 했는데 정작 손님이 없네요"

자본통합시행법(자통법) 시행 첫 날인 4일 은행과 증권사 창구는 한산했지만 한층 까다로워진 판매 요건에 직원들의 긴장감은 팽팽했다. 다만 오랜 시간 여유를 두고 준비해 온 판매사와 그렇지 못한 곳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이날 은행과 증권사를 찾은 고객들은 '투자자정보 확인서' 등 다양한 서류 작성 등으로 가입절차가 복잡해지고 시간이 길어지자 다소 불편해하면서도 자신의 성향 및 상품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고객이 몰리면 대기 시간이 길어져 불만이 높아지고 영업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창구는 한산.."방금 전 손님도 기자였는데요"

시중 은행들은 창구 내 '펀드판매전용창구'를 별도로 표시해 놓고 직원 특별연수도 받는 등 새 업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증시 상황이 불안한 탓에 새롭게 펀드를 가입하겠다는 고객은 찾기 힘들었다.



서울 도심의 한 은행에선 한 고객이 1시간에 걸쳐 펀드 가입 상담을 받았다. 그가 자리를 뜬 후 펀드판매 여부에 대해 묻자 창구 직원은 "좀전 그 손님은 자통법에 대해 취재하러 온 기자"라고 전했다.

인근의 다른 은행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펀드 상담 창구는 오전 내내 빈 자리였지만 대출과 예금 등을 취급하는 일반창구에는 대기표를 손에 쥔 고객들이 줄을 섰다.

이 은행 직원은 "일반 창구 6개와 투자상담창구 2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펀드 문의 고객이 없어 민망할 지경"이라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통법 시행이 은행 지점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은행을 한 고객은 "새로운 법이 시작돼 펀드 가입이 쉽지 않다는 말만 들었다"며 "은행만 믿기 보다는 이제 직접 책임져야 하는 게 많다고 하니 당분간 펀드 가입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은행 창구 직원은 "앞으로 공격적 투자를 원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증권사를 통해 거래하게 될 것 같다"며 "인기상품을 팔지 못해 앞으로 은행 고객이 줄지 않을 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증권사 '준비 만전'..'불성실' 오해 소지도

증권사들은 빠듯한 시간 속에서도 교육과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등을 통해 새 판매 절차를 숙지한 상태라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다만 법 시행 후 처음으로 고객 맞이에 나선 탓에 직원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나대투증권 방배동 지점은 자통법 시행 첫 날임을 감안해 고객 안내 차원에서 설문지를 견본 작성해 창구에 배치했고, 창구 뒤쪽에 자리한 책임자도 일선 창구로 나섰다. 평소 직원들의 외부 판촉도 제한했다.



미래에셋 여의도 영업지점은 '투자성향 진단 서비스 시행'이라는 안내문구가 고객을 먼저 맞았다. 이 증권사는 3개월 전부터 새 업무 방식을 적용해 왔고, 펀드 가입에 1시간 넘게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펀드 가입 창구를 지점 안쪽으로 배치했다.

삼성증권도 이미 지난 달 28일 표준투자준칙에 따른 전산시스템 준비를 마쳤다.. 삼성증권측은 "이날 계좌개설 및 상품가입시 기존 2~3배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데 고객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며 "특히 원금 비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의 경우 초고위험(5등급) 상품으로 분류, 가입절차가 까다로워져 혼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동양종금증권 금융센터 관악지점에선 이미 상담을 예약한 60대 고객이 새 절차에 따라 별 문제 없이 40분에 걸쳐 신탁상품에 가입했다. 일부 신규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개설 고객들은 투자정보 확인서를 받는 것에 대해 꺼려하기도 했다.



지점 관계자는 "본인 정보와 서명이 상세하게 기입돼 이후에 투자자 책임이 더 큰 게 아니냐며 고객 대부분이 손실을 감수하지 않는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며 "고객이 밀려 혼잡할 때에는 대기시간이 길어져 고객 불만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한 증권사 직원은 "새 업무는 충분히 숙지한 상황이지만 과거보다 고객 응대에 제한이 생겨 조심스럽다"며 "고객이 묻는 말 외에 추가 설명을 자제하다보니 불성실하다는 인상을 받아 불쾌해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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