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삼성의 한걸음

머니투데이 성화용 시장총괄부장 2009.01.22 08:10
글자크기
2004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4.6%였다. 그중에서 삼성이 기여한 몫이 1%포인트를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한 해 대졸자가 희망하는 초임(연봉) 2000만원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 가운데 삼성이 20% 이상을 만들어낸다는 통계도 나왔다.

글로벌 일류기업 삼성은 이 때 이미 부동의 재계 1위로 정점에 올라 있었다. 동시에 길고 어두운 터널의 한 가운데로 진입한 시점이었다.



2005년 봄부터 유난히 삼성 얘기가 많아졌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삼성의 경제독점, 인재독점을 들먹이며 '삼성공화국'를 떠들어댔다. 여름에 접어들 무렵, 급기야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도 '삼성 경계론' '삼성 독주론'을 의식하는 발언들이 나왔다.

그 한달 전에는 이건희 회장이 고려대에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학생들은 그룰 '노동탄압 박사'라고 야유했다. 양편으로 갈라선 여론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그해 여름 '안기부 X 파일 사건'이 터지자 삼성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10월에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에 대해 1심 법원이 '업무상 배임'을 판결했다. 삼성의 우울한 침묵이 이어졌다. 삼성에 대한 공세는 더욱 힘을 받았다.

2006년이 시작되자 5개월의 해외체류 끝에 이건희 회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귀국했다. 삼성은 '여론'과의 '거래'를 택했다. 이회장 일가 재산 거액을 사회에 헌납하고 현안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멀쩡한 이사회를 놓아두고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으로부터 감시를 받겠다고 했다.

삼성을 둘러싼 끊임없는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정적인 방아쇠를 당긴 건 김용철이었다. 2007년 가을 전직 삼성맨 김용철은 삼성의 정관계 로비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했다.


특검 수사가 시작됐다. 헌납하고 포기하겠다며 머리를 숙인지 2년도 안돼 다시 반(反)삼성의 불길이 거세게 번졌다. 이건희 회장은 결국 퇴진을 선언했다.

회장 퇴진 이후 삼성은 흔들렸다. 계열사 '독립경영'을 내걸었지만 방향과 목표가 모호했다. 아스팔트에 붙은 젖은 낙엽처럼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비난, 그나마 삼성쯤 되니까 축이 무너져도 이정도로 버티는 것 아니냐는 옹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례없는 세계적 불황이 찾아왔다. 삼성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오히려 삼성은 이 때부터 출구를 더듬기 시작했다.

몇 년을 가도 끝이 없는 갈등의 터널. 경제위기속에서 더욱 무거워지는 삼성의 존재감. 그 미묘한 불화(不和)의 틈새를 비집고 마침내 삼성은 창사이래 최대규모의 경영진 인사를 단행하고 조직도 확 바꿨다.

'실험'이라고, '혁신'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선언'이라고 보는게 맞다. 젖은 낙엽처럼 붙어있을 수는 없다, 적당히 버티고 있을 수만은 없다, 사회와의 해묵은 갈등이 두렵긴 하지만 더 이상 눈치만 보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절박하고 현실적인 외침으로 이해된다.

삼성은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에 있다. 다만 이제는 확실히 출구를 찾아 그 방향으로 크게 한걸음 내디뎠다. 물론 출구는 이미 그 쪽에 있었다. 걸음을 떼기 까지 고통이 컸을 뿐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