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짜리 동전 6111개..무거운 사랑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08.12.2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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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 사경문씨, 공동모금회 20호 행복나누미 선정

↑사경문 씨가 모으고 김은주 씨가 보낸<br>
10원짜리 6111개.ⓒ공동모금회↑사경문 씨가 모으고 김은주 씨가 보낸
10원짜리 6111개.ⓒ공동모금회


6만1110원. 지폐로 모았다면 봉투 하나에 가볍게 담길 것이다. 하지만 10원짜리로 그 돈을 모았다면?

지난 9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중앙회에 종이상자 한 개가 배달됐다. 20㎏에 가까운 묵직한 상자였다. 상자 속 두꺼운 비닐봉투 안엔 10원짜리 동전이 하나 가득 담겨 있었다. 모두 합해 6111개. 편지가 있었다.

"모두 얼마인지는 모릅니다. 돈이 든 봉투를 차마 아직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5000원도 되지 않을 수도 있고 3000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경문 님의 뜻처럼 소중하게 알차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 하나뿐입니다."



사연을 보낸 이는 저소득 지역민들에게 취업, 교육 등 사회서비스를 연결하는 김은주 전남장흥지역자활센터 사례관리사였다.

봉투 속 동전은 구강암의 일종인 편평상피세포암종으로 투병 중인 사경문 씨(48,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가 모은 것이었다.



김 관리사는 사씨가 "10원짜리라 얼마 되지 않겠지만 내가 이웃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며 지난해 12월 이 동전들을 전달했다고 편지에 썼다. 당시 사씨는 수술비로 빌린 빚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 재수술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김 관리사가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사씨는 “이미 남을 위해 쓰겠다고 모은 돈이라 미련 없으니 사례관리사 선생님께서 과자를 사 먹던지, 이웃을 돕든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 후 1년이 지났다. 김 관리사가 공동모금회에 사씨의 돈을 기부하기로 하고 “이제야 보내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사씨는 뒤틀린 얼굴로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니까요. 나 지금 또 모으고 있어요. 500원짜리를 모으면 좋겠지만 500원짜리는 우선 돈이 궁하면 쓰게 돼서 10원짜리로 모으고 있어요. 많이 모아 놨어요.”

지금도 사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얼굴이 뒤틀리고 걸음걸이까지 불편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재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 관리사는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매년 추수 때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읍사무소에 쌀을 몇 가마니씩 보냈던 사람인데 수술 후엔 수술비로 빌린 돈도 갚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사경문 씨의 수술 전 모습<br>
ⓒ공동모금회↑사경문 씨의 수술 전 모습
ⓒ공동모금회
공동모금회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10원짜리를 모은 사씨를 62일의 나눔릴레이 20호 행복나누미로 선정했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본인의 처지도 어려운데도 한 푼 두 푼 소중한 정성을 모아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사씨 치료비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은주 전남장흥지역자활센터 관리사가 보낸 편지 원문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습니다. 저는 정보에 취약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취업, 보육, 교육 등을 사회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일을 하는 자활사례관리사일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사경문 님은 현재 나이 48세로 2005년 11월 21일 “편평상피세포암종(하악골 및 치은부위) 의학용어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강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던 분입니다.



사경문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9월입니다.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에 사는데 첫 인상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얼굴이 뒤틀려 있고 앞니가 서너개 빠졌고 걸음 걷는 것 또한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장애에 비해 훨씬 밝은 미소를 지니고 있었으며 생각 또한 긍정적이었습니다. 본인이 암에 걸린 사연과 수술과정을 이야기해 주며, 참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데 일을 하여 돈을 벌고 싶은데 몸에 지닌 장애 때문에 아무일도 할 수 없어 한탄스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2월 중순쯤 찾아뵈었을 때 사례관리사에게 줄 것이 있다며 큰 주황색 비닐 뭉치를 건네주었습니다. 엄청 무거운 물건이어서 무언이지 여쭈었습니다.



“내가 수술을 하기 전부터 어렵게 사는 사람을 위해서 10원짜리 동전을 모아 왔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 모은 것은 아니지만 우선 모아 놓은 것 어려운 이웃에게 보태고 또 모으면 그때 또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려고 그럽니다. 10원짜리라 얼마 되지 않겠지만 내가 이웃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으며 이제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니 선생님이 이웃에게 전달해 주시면 좋겠네요“ 라며 너무 덤덤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아니 본인의 형편도 어려워서 재수술을 받지 못하시면서 이 돈을 이웃을 위해 쓰신다구요.” 그러자 사경문 님은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남을 위해 쓰겠다고 모은 돈인데 미련 없으니 사례관리사 선생님께서 알아서 과자를 사 먹던지, 이웃을 돕든지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라고 딱 잘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 이상 사양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무거운 동전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어떻게 쓰는 것이 동전을 사경문 님의 뜻을 살리는 길일까 무척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부를 하더라도 사연이라도 알리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아 글을 써서 보낸다는 것이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 이렇게 간단히 사연 적어 보냅니다.



지금 사경문 님은 약간의 장애를 가진 아내와 아들 둘을 두고 있습니다. 2005년에 수술했던 곳을 다시 수술을 해야 하나 가진 수술비가 너무 비싸서 수술 받을 엄두도 못 내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장애가 분명하나 장애진단도 받지 못해 그냥 막연히 살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사경문 님은 암 진단을 받기 전 매년 농사를 지으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읍사무소에 쌀을 몇가마니씩 보내고, 돈도 기부하는 등 불우이웃돕기를 몸소 실천하였던 사람인데, 수술 후 수술비로 빌린 돈도 갚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경문 님이 암수술을 받을 때는 읍사무소에서 먼저 나서서 수술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답니다.

며칠 전 만나서 “선생님께서 주신 돈을 아직 보내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보내게 되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전해 드리니,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니까요. 나 지금 또 모으고 있어요. 500원짜리 모으면 좋겠지만 500원짜리는 우선 돈이 궁하면 쓰게 돼서 10원짜리 모으고 있어요. 많이 모아 놨어요” 라며 웃으셨습니다. 그 웃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웃음이었습니다.



10원짜리 모아놓은 동전이 모두 얼마인지는 모릅니다.
돈이 든 봉투를 차마 아직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5,000원도 되지 않을 수도 있고 3,000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경문 님의 뜻처럼 소중하게 알차게 쓰였으면 하는 바램하나 뿐입니다. 2008년 12월 5일 김은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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