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명동롯데ㆍ갤러리아…80%가 日人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08.12.0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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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엔고가 몰고 온 명품쇼핑 바람

늦은 저녁 광화문의 한 커피전문점 매장. 단발머리에 패셔너블한 부츠를 신은 여자 두 명이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며 커피를 홀짝거린다. 그들 앞에 수북이 쌓여있는 각종 전단지와 잡지가 눈길을 잡아끈다. 일본어다. 한국의 쇼핑코스와 상품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일본 쇼핑객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스포츠센터 트레이너로 일하는 마유미(29)씨와 미카(27)씨는 쇼핑 코스를 짜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가면 싸다’는 관광안내 포스터를 보고 여행을 왔다는 그들은 3일 동안의 한국여행 중 첫날밤이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명동 면세점과 백화점에 들러 ‘윤손하 화장품’과 ‘주지훈 옷’을 사고 밤에는 때밀이 목욕탕에 들러 목욕도 할 생각이라며 잔뜩 신이 난 표정이었다.



미카 씨는 가방에 손을 넣고 주섬주섬하더니 쿠폰을 잔뜩 꺼내 보여줬다. 루이비통 5% 할인쿠폰, 면세점 10% 할인쿠폰 등 다양한 종류의 쿠폰이 쏟아져 나온다. 일본의 ‘한국관광 사이트’에서 출력한 쿠폰들이라고 했다.

미카 씨는 “최근에는 한국관광 사이트도 많아졌기 때문에 쿠폰을 얻을 곳도 많고 쇼핑가이드북은 한국여행 오기 위한 필수 준비물"이라며 “미디어 마다 한국 스타들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쇼핑거리가 자주 소개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한국관광이 유행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국내 백화점과 면세점 명품 매장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9월부터 가속화된 엔화 강세로 인해 일본인 관광객이 국내로 몰려오면서 일본인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면세점ㆍ백화점 명품코너 80%가 일본인

“하이, 사이즈와 이쿠쯔데스카?” (네,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요상와 도노구라이 데스카?” (예산은 어느 정도 생각하세요?)


지난 11월25일 저녁 A백화점 10층에 위치한 면세점의 구두 매장. 평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에 종업원의 손놀림이 바쁘다. 그런데 손님들이 대부분 일본인이다. 종업원들은 유창한 일본어로 손님을 상대하고, 손님들은 일본어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물건을 뜯어보느라 바쁘다.

30분 동안 이 매장을 찾은 손님은 남녀 커플 한 팀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인. 분명히 대한민국 서울 명동에 위치한 백화점에 서 있는데, 이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신나는 명동롯데ㆍ갤러리아…80%가 日人


이 매장에서 근무하는 안병남 판매사원은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는 일본인이 가장 많긴 했지만 요즘처럼 많지는 않았다”며 “예전에는 내국인 80%에 일본인 20%라면, 요즘엔 일본인이 80% 내국인이 20% 정도”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엔고가 본격화된 지난 9월부터 일본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엔고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국 명품의 가격이 저렴해진데다가 최근에는 한류열풍을 타고 한국 스타의 물건을 찾는 일본쇼핑객들이 많다”며 “특히 얼마 전부터는 백화점들이 일제히 명품 세일을 시작하며 일본 관광객들에게는 명품을 더욱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호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신 ‘카와이’ ‘야스이’를 외치며 물건 구경에 한창이던 아키(30) 씨는 한참을 고민하다 갈색 롱부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키 씨는 “136달러니까 일본에서는 2만7000엔 정도 하는 가격인데 1만3000엔에 샀다”며 “값이 싸서 옷, 가방 등을 생각보다 너무 많이 사버렸다"며 장난스런 투정을 늘어놓는다.



이 백화점에서 일본어 통역을 맡고 있는 정소희 통역안내원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정 통역안내원은 “우리 백화점은 명동, 남대문 등 일본인들이 주로 찾는 쇼핑지 근처에 위치해 있어 일본인들이 특히 많이 찾는 것 같다”면서 “예전엔 30~40% 정도 차지하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요즘엔 70%까지 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단순히 관광객 수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도 성별도 다양한 관광객들이 두루 찾지만 특히 30~40대의 아줌마 관광객들이 많다. 엔고를 이용해 저렴하게 명품을 구매하려는 '아줌마 부대들'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정 통역안내원은 “예전에는 ‘식품관이 어디에요?’를 가장 먼저 묻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면세점이 어디에요?’라는 말을 많이 묻는다”며 “관광의 목적이 문화재 관람보다는 쇼핑으로 변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아무래도 엔고 때문에 ‘싸다’는 인식이 커져서 그런지 예전보다 씀씀이도 훨씬 커졌다”며 “요즘에는 물건을 대량 구매한 뒤 운송비를 부담하면서까지 일본으로 직접 운송을 부탁하는 관광객도 늘어났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관광객을 잡아라…백화점 마케팅 치열

일본인 관광객 특수를 가장 톡톡히 누리고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지난 1~9월 ‘tax free shopping’의 환급 신청을 분석해 본 결과, 외국 관광객 구매건수는 지난해에 비해 45.8%가 늘어났다. 구매금액 역시 106억 정도. 지난해와 비교해 63.5%가 늘어난 수치다.



‘tax free shopping’은 외국인들이 3만원 이상 물건을 구매할 경우, 세금 환급을 신청한 이들에 한해 인천 공항 텍스 프리 창구에서 전표를 작성하면 구매대금 중 일정액을 되돌려 주는 제도. 세금 환급 신청을 하지 않은 외국인이 제외된 수치이긴 하지만, 비교적 정확하게 외국 관광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유행의 거리’ 청담동에 위치해 있어 일본인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쇼핑코스로 손꼽히는 압구정 갤러리아 명품관 역시 지난 10월 일본ㆍ중국 등 외국인 매출이 전년도 동기간 대비 15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일본인 관광객이 급증하자 백화점들 역시 저마다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및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롯데백화점은 일본 관광객의 쇼핑 편의를 위해 일본어로 된 안내가이드를 각층 에스컬레이터 주변에 비치했다. 일본어 전문 통역사를 지하 1층 안내데스크에 상주시켜 백화점의 전문적인 안내를 맡고 있기도 하다. 향후에는 LCD모니터에 일본어로 된 매장 레이아웃도 표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롯데호텔에 비치하고 있는 할인 쿠폰북도 구성이 대폭 개편할 방침이다. 판매 상품의 5~10% 할인 쿠폰을 포함하고 있는 이 쿠폰북은 현재 김, 김치, 젓갈, 선식 등과 관련된 상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의류, 핸드백 등 일본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명품 패션 상품들까지도 할인 쿠폰북을 추가적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갤러리아백화점 역시 11월 들어 일본어 전문 통역 직원 2명을 채용하는 등 외국인 쇼핑 도우미 인력을 확충하고 나섰다. 일본 쇼핑객들의 쇼핑을 돕기 위한 일본어 브로셔를 새롭게 제작, 배포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유제식 갤러리아백화점 CS팀장은 “백화점 전체 매출에 영향을 미칠 만큼 최근 들어 일본 쇼핑객을 포함한 외국 쇼핑객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백화점으로서 외국인들도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앞으로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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