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못 막은 경찰…국가 배상 책임"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08.11.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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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신고받고 출동 뒤 섣불리 철수" 원심 뒤집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범죄 징후가 없다며 돌아간 뒤 실제 살인이 일어났다면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7부(최완주 부장판사)는 스토커에게 살해당한 A씨(당시 27세·여) 유가족이 "경찰의 안이한 대처로 딸을 잃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을 깨고 "국가는 26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2006년 혼자 살던 A씨 집에 한달 전 헤어진 남자친구 B씨(28)가 찾아왔다. 9일 전 스토킹 혐의로 긴급체포되기도 했던 B씨는 이날 A씨에게 다시 만나줄 것을 거듭 요구했다.



A씨는 이를 거절하고 직장 선배와 통화하며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화가 난 B씨는 A씨를 때리며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고 A씨는 통화 중인 선배에게 "살려달라"고 외쳤다.

선배는 현장으로 달려왔고 구타 현장을 목격한 이웃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를 받은 지 3분 만에 S씨 집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A씨의 선배는 경찰에게 "가해자가 긴급 체포됐던 스토커 같다"며 강제로 문을 열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가족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며 망설였다.

경찰은 결국 출동한 지 1시간 만에 철수했고 그동안 B씨는 A씨 입을 청테이프로 막고 성폭행하며 다시 만나 달라고 애원했다. A씨가 거듭 거절하자 B씨는 A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다.

1심 법원은 A씨 유가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등 경찰관이 집안에서 중한 범죄가 행해지고 있음을 알기 힘들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신고 내용이나 L씨의 현장 진술로 볼 때 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성폭행 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피해자 A씨에게 전화연결을 시도하지 않았고 가해자로 의심된 B씨의 긴급체포 혐의도 확인하지 않는 등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며 유족들에게 26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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