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재발방지 위해 화폐제도 개혁해야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2008.10.22 07:08
글자크기

정부의 화폐발행 독점으로 금융위기 주기적으로 발생

편집자주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및 실물경제 위기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 태풍에서 벗어나지 못해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며(원화가치 급락), 부동산 및 실물경기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금융위기는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토론주제를 제공하기 위해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국경제연구원에 기고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편집자>

시장경제는 가격 시스템에 의하여 움직인다. 가격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경제가 불안정해진다. 가격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유재산권과 자유경쟁뿐만 아니라 화폐가치의 안정이 꼭 필요하다.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격이 화폐로 표시되기 때문에 화폐가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가격 시스템에 왜곡이 생기고 그로 인해 경제발전과 경제의 안정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금융위기 역시 통화관리를 잘못해서 생긴 결과다.

경제침체를 우려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이하 연준)은 2001년부터 초저금리 정책을 썼고, 초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과잉유동성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주택시장을 과열시켰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연준이 2005년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모기지 대출이 잇달아 부도나고 그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파산하면서 오늘날의 금융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최근의 금융위기와 비교되고 있는 1930년대 대공황도 통화정책의 잘못에서 촉발되었다. 1920년대 미국 정부는 통화팽창 정책을 썼다. 연준은 1921년 중반에서 1929년 중반까지 통화 공급을 60% 이상 늘렸다. 이러한 통화 증가로 이자율이 떨어졌고, 주가가 상승하고 경제가 붐을 이루었다. 그러나 통화량 증가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1929년 후반에 들어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통화량을 줄이기 시작하여 3년에 걸쳐 30% 가량을 줄였다. 갑작스런 통화 공급 감소로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통화관리를 잘못했을 경우에는 여지없이 나타났다.

현재와 같이 화폐(현금) 발행을 독점하고 있는 중앙은행제도에서는 중앙은행이 통화를 재량적으로 공급하는 한 금융위기는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금융위기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중앙은행을 통한 정부의 불환지폐제도(fiat money system)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사실 중앙은행을 통한 정부의 불환지폐제도는 시장에서 진화한 제도가 아니다. 민간은행들이 화폐를 경쟁적으로 공급하게 하는 자유금융(free banking)의 민간화폐제도는 18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 동안 60여 개 국가에서 매우 안정적으로 시행되었었다. 안정적이고 비교적 광범위하게 채택되었던 민간화폐제도가 20세기에 들어와 중앙은행 모형으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민간화폐제도가 소멸된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의 역사적 사건을 빌미로 은행을 통제하여 정부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정치적 동기 때문이었다.

민간화폐제도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1791~1821년의 기간 동안 잉글랜드는 300개 이상의 은행 실패를 경험하였지만, 같은 기간 동안 민간화폐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던 스코틀랜드는 단 하나의 은행 실패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가 설립된 후 1931~1933년의 기간 동안 9,000여 개의 미국 은행들이 실패하였는데, 이는 중앙은행이 없었던 그 이전보다 심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기간에 민간화폐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던 캐나다에서는 은행 공황(bank panic)을 전혀 경험하지 않았다.

자유금융의 민간화폐제도는 성공적으로 실시되었던 역사적 경험도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제도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시행하고자 할 때 현상 유지를 원하는 기존 이익집단들이 크게 반대할 것이다. 아마 정부가 앞장서서 반대할 것이다. 민간화폐제도가 실시되면 인플레이션 조세(시뇨로지)를 잃고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민간화폐제도가 화폐가치와 경제를 안정시키는 바람직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반대 때문에 그것의 시행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민간화폐제도가 사실상 실행되기 어렵다면 우리는 현 중앙은행 체제에서 화폐가치 안정과 경제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준칙에 의한 통화정책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고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통화량 공급 준칙이나 명시적인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추진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선택할 경우에는 현재의 소비자물가지수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재화나 자산을 포함시키는 지수를 개발하여 보다 포괄적인 물가지수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의 소비자물가지수가 포함하는 재화의 범위가 너무 좁아 통화 증가의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mail protect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