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를 살피던 한 뱅커가 빨간 불에도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신호등 버튼을 누르고 파란불로 바꿔 건너는 뱅커도 있습니다. 이게 '영국식' 교통 문화라고 합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 그만 머쓱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좀 덜 급했던 걸까요.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좀 굼떠 보였습니다.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리는 듯 했습니다. 특히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그랬습니다.
한은은 18일 '경쟁입찰을 통한 스와프 거래'를 도입키로 했습니다. 국제 신용평가사가 국내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하향 조정한 뒤였습니다. 은행이 경쟁 입찰을 통해 필요한 만큼 달러를 구할 수 있단 설명입니다.
은행권에선 여전히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참여 은행이 문제였습니다. 경쟁입찰엔 국내 은행 뿐 아니라 외국계 은행과 외은지점도 포함됐습니다. 이들이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달러 싹쓸이'가 우려된다는 겁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같은 이유로 정부는 수출입은행을 통한 유동성 공급 지원 대상에 씨티은행, SC제일은행을 뺐습니다. 가능한 국내 은행에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겁니다.
물론 외국계 은행을 제외한다면 통상 마찰이 우려됩니다. 대신 한 금융사가 20%이상 달러를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시장금리와 동떨어진 금리를 제시하면 낙찰에서 제외키로 했지요. 한은 관계자는 "외은 지점 등은 본점에서 달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입찰에 적극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은행권은 '안이한' 생각이라고 꼬집습니다. 전날 스와프 시장에서 외국계 금융기관이 높은 금리를 주고 달러를 싹쓸이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통화스와프(CRS) 1년물 금리가 0%까지 하락했지요. 원화를 빌려주고 달러 자금을 받을 경우 원화 이자를 받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위기에 몰린 은행권과 한은의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통상마찰'을 걱정할 정도의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지요. 아무래도 한국은행엔 '영국식 신호등'이 필요한 때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