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우조선 투자 '혼선의 이유'

더벨 현상경 기자 2008.10.0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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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대체투자委 개최… '승자만 지원' 가능성

이 기사는 10월02일(15:27)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당초 2일로 예정된 국민연금의 대우조선해양 투자방침 확정일자가 8일께로 연기됐다.



국민연금 대체투자위원회 위원들은 현재 불참은 물론, 3개기업 동시지원 등의 가능성도 아직까지 열어두고 있으며 기술적인 부분을 검토중이다.

다만 '사실상 불참'이라고 판단한 시장의 시각에 대해 이렇다 할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의구심을 확산시키고 있다.



대체투자委, 어떻게 구성?

국민연금은 이날 오전 7명의 위원들이 참여하는 대체투자위원회를 긴급 취소했다. 투자가능성과 방법에 대한 애매모호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8일 또는 9일에 위원회를 열어 공식입장을 결정하기로 했다.

현재 국민연금 대체투자위원회는 기금운용본부장, 대체투자실장, 운용전략실장, 리스크관리실장등 4인의 내부위원과 3인의 외부위원이 참석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특정투자안건을 위원회에 상정, 4~5명 이상의 위원이 공통된 의견을 제시하면 이를 공식입장으로 확정한다. 다른 의견을 제시한 위원들도 반대의사가 심하지 않으면 '소수의견' 정도로만 간주해 정리한다.


일단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 투자 불참을 100% 확정한 것은 아니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 복수의 국민연금 관계자는 "8일 또는 9일께 대체투자위원회가 열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상 불참이다"라고 판단한 시장의 시각에는 이렇다할 해명이나 또는 반대입장 표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위원들간 입장도 조금씩 다른 상황. 김선정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대우조선 인수와 관련된 이번 입찰에는 인수후보기업과 컨소시엄 참여를 안 할 가능성이 크다"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기업에서 다른 조건의 제안을 해오면 재검토해 참가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벌어진 상황만 놓고 보면 확실한 것은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투자에 참여하든, 안하든 1곳의 후보 컨소시엄을 지원하는 방안은 거의 포기한 것이란 점이다.

남은 방법은 시장의 반응대로 '불참'하든지, 아니면 또 다른 '대안'을 마련해 산업은행을 설득하고 참가하는 방법이다.

불참 가능성의 이유 "뒷말은 싫다"

국민연금은 최근까지도 약 20가지의 대우조선 투자방법을 놓고 법률적, 기술적 검토를 해왔다. 좌, 우로 가장 극단적인 방안이 각각 '불참'과 '3개 후보 동시지원'에 해당되며 이외에 다양한 투자방안과 구조가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왔다.

이런 국민연금의 혼선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국민연금의 불참가능성은 이미 지난 8월중순 이후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다. 후보기업들에 대한 풋백옵션 요청이 도마위에 오른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또 특정기업을 지원할 경우 인맥, 학맥, 지연의 잣대를 들이댄 특혜비시 우려도 고민거리였다. 이런 상황을 결정하는 키워드는 결국 여론의 향배, 즉 국민연금에 대한 시각이 어떨 것이냐도 따져볼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1명만 고르기가 너무 싫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지난 2006년 과열양상을 보인 대우건설 매각전 때도 포트폴리오 구성의 어려움을 대외명분 삼아 슬그머니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시끄러운 딜, 뒷말이 우려되는 딜에는 들어가지 말자"는 연금의 방향성이 발휘된 사례다.

시장상황 변화는 이런 판단에 무게감을 더했다. 미국발 신용경색으로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금리가 치솟은 것. 위원들 사이에서는 "굳이 1조5000억원이나 되는 돈을 대우조선해양 한 곳에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무엇보다 최근 두달간 대우조선해양 이외에도 국민연금이 투자할 수 있는 다양한 M&A딜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위원들 사이에서는 극히 최근까지도 "국민연금이 상대적으로 투자여력이 많고, 국민들의 자금을 집행하는 만큼 국가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딜에 참여해 자금시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 조차 특정 후보군을 지원했을 때의 부담감을 감당하기는 충분하지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안은 '승자'만 지원...열쇠는 산업은행

결국 대안으로 나올 만한 방안들이 3곳 기업 동시 지원, 그리고 우선협상대상자 선정후 지원으로 요약된다.

국민연금은 대한통운 M&A당시에도같은 자금을 놓고 투자주체를 '국민연금'과 '사모펀드'로 나눠 동시 지원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최근 후보기업과 질의응답과정 등에서 산업은행 실무진 등에게 은밀히 이런 동시 다발적 지원이 가능한지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쉽게 말해 1조5000억원의 자금을 두고 특정기업에 투자확약서(LOC)가 아닌 투자의향서(LOI) 수준의 지원의사를 모두 표현하고 '승자'가 결정되면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것.

하지만 국민연금은 후보 기업들로부터 이미 자사 내부상황이 담긴 기밀성 보고서를 다수 받아 본 상황이다. 3곳 동시지원을 추진할 경우 비밀유지 문제나 이해상충 문제가 거론되고 후보기업과 산업은행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남은 것은 아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지원.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다.

산업은행은 "전략적투자자(SI)가 됐든, 재무적투자자(FI)가 됐든 본 입찰에 이름을 올린 컨소시엄 구성원들이 MOU 체결 이후 바뀌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을고수하고 있다. 계량 및 비계량을 포함한 인수후보 평가에서 중요 요소인 자금동원력 증빙여부 판단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연금의 고민은 "대우조선해양 자체에 대한 매력도 저하 보다는 원하는 투자스킴을 매각자와 후보기업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그게 가능하다면 대우조선해양에 들어가는 것이고, 아니면 포기하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국민연금이 심도있게 고민하고 있다는 '기술적인 부분' 역시 이 같은 방안들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법률적 문제와 논거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망된다.

어찌됐거나 이를 해결할 키는 매각자측인 산업은행이 쥐고 있다.

8, 9일께라는 대체투자위원회의 개최여부나 결과도 더 지켜봐야 한다. 형식상으로는 일부 실무자과 기금운용본부장 마음대로 결정하는 게 아닌 만큼, 외부위원 3인의 의견을 담은 '위원회'의 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불참'으로 의견을 이미 조율했다면 투자안건 상정에 안 올리면 그만이라는 논리도 적용 가능하다.

다양한 옵션 중 가장 욕먹지 않는 방안을 고민하고, 시장과 여론의 반응까지 떠보려는 게 수차례 위원회 개최를 연기하고 공식입장 표명을 꺼리는 국민연금의 현재 속내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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