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KO후폭풍]하나銀, 돌아온 '부메랑'

더벨 이승우 기자 2008.09.2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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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전문가들 "태산엘시디 PIVOT, 무모했던 계약"

편집자주 KIKO 통화옵션의 악몽이 시작됐다. 환헤지 상품시장의 최대 히트작 KIKO에 가입한 기업들이 헤지는 커녕 엄청난 환손실에 떨고 있다. 심지어 파산에 직면하는 곳까지 생겼다. 독이 될 수 있는 상품을 무리하게 팔아온 은행의 장삿속과 근시안적인 전망으로 안이하게 환위험에 대처한, 또는 불나방처럼 투기에 뛰어든 기업의 합작품이다. KIKO 통화옵션의 실태와 피해사례를 통해 향후 대책을 모색해 본다.

이 기사는 09월25일(09:26)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태산엘시디가 기업 회생절차 신청에까지 이르는 과정에 하나은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결국엔 하나은행이 그 손실을 떠안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도 있다.

태산엘시디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하나은행과 체결한 'PIVOT'이라는 신종 환헤지 파생상품이었다.



지난 8월 태산엘시디가 감독당국에 제출한 '파생상품거래손실'에 따르면, 6월말(환율 1046.1원) 현재 KIKO로 입은 손실은 806억원이었다. 이후 환율은 1140원대(9월23일 현재)로 올라 손실은 더욱 커지고 있다.

태산엘시디의 KIKO 손실이 커지고 있었던 올해 상반기, 정부의 물가 안정을 위한 달러 매도 개입으로 환율이 안정 기미를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게 문제였다.



3월 중순 이후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내려오자 태산엘시디와 하나은행은 '무모한' 도전을 시도했다. 환율이 더 내릴 것으로 보고 4월 PIVOT 이라는 또 다른 환헤지 상품 계약을 체결한 것.

피봇이란 환율 상하단을 두고 그 사이에서 환율이 움직일 것을 예상하는 통화옵션이다. 환율이 이 레인지 사이를 움직일 때는 이익이 되지만 이를 벗어날 경우 KIKO와 같이 계약금액의 두 배를 팔거나 사야 해 손실이 커질 수 있다.




하나은행과 태산엘시디가 맺은 PIVOT의 하단은 980원, 상단은 1030원이었다. 4월 계약 당시 환율이 1000원 근처였으니 위쪽으로 30원 정도의 여유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이 50원(상하단 레인지폭)의 변동을 예측하고 체결한 PIVOT 계약에 대해 '너무 무모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올해 환율 변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컸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도 환율은 한 달만에 위쪽으로 30원을 순식간에 탈환했고 9월에는 폭등, 1110원대로 올라섰다. KIKO에 이어 PIVOT이 또 폭탄이 된 셈이다.



이에 대해 한 외환전문가는 "KIKO로 보고 있었던 손실을 만회해 보려고 환율이 1000원 아래로 안정되는 때에 재구조화를 한 것 같은데 기름통을 들고 불길에 뛰어 들어간 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변동성이 큰 장에서 레인지 50원 안에 환율이 갇힐 것이라 생각한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였는지 의심이 될 정도"라고 지적했다.

또 이 PIVOT 계약으로 태산엘시디는 연간 벌어들일 수 있는 외화 이상의 환헤지(오버헤지)를 하게 됐고 결국 더 이상의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어져 기업 회생 절차 신청을 하게 됐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태산엘시디의 손실이 하나은행으로 넘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태산엘시디가 회생절차 신청을 하면서 하나은행이 태산엘시디와의 통화 옵션거래 반대 포지션 청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17일 기준 태산엘시디와의 파생상품으로 2861억원의 평가손실이 났다고 공시했다. 이중 피봇 손실은 1388억원이었다.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국내 은행(하나은행 포함) 대부분은 기업들과 통화옵션 계약을 체결하면 수수료 정도의 이익을 보고 옵션 포지션 거의 대부분을 다른 은행(A은행이라고 가정)에 넘긴다. 포지션을 넘긴 이후에 하나은행은 중간에서 기업과 옵션 포지션을 받은 A 은행간에 계약 이행의 중간자 역할을 하게 되는데 기업이 돈을 갚지 않을 경우 하나은행이 A 은행에 계약 이행을 대신해야 한다. 결국 하나은행이 태산엘시디의 통화옵션(KIKO와 PIVOT)에서 나는 손실을 대신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하나은행은 지난 19일과 22일, 태산엘시디가 갚지 못한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직접 구해, 옵션 계약 이행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관계자는 "태산엘시디가 회생 절차에 들어갔지만 아직 채권과 채무에 대한 확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후 상황을 지켜보며 구상권 청구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6월말 현재 하나은행의 매매목적 통화옵션 잔액은 19조9441억원이다. 파생상품 자산은 4466억원이고 부채는 2901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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