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혈 보관, 안전장치 마련돼야"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2008.09.2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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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공동에 사는 A씨는 '제대혈'이란 말만 나오면 속이 쓰리다. 지난 2004년 5월 태어난 둘째 아이의 제대혈을 보관했던 K사가 망하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있지 않다. 제대혈 보관통이 서울의 한 연구실 밖에 방치되다가 지방으로 옮겨졌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보관된 제대혈이 온전한지조차 의문스럽다.

이같이 많은 사람들이 제대혈 보관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마땅한 규정이나 관리기관이 없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4일 제대혈 보관사업을 하는 B사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제대혈 보관건수는 2년전에 비해 50% 가량 증가했다. 아이를 위해 제대혈을 보관하려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B사처럼 제대혈 보관사업을 하는 업체는 모두 18곳에 이른다. 이들이 보관중인 제대혈은 적게는 22만여건에서 많게는 34만건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제대혈 보관사업은 허가제가 아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신고만 하면 할 수 있기 때문에 영세한 업체도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제대혈을 보관해주는 업체들은 가입시 100만~200만원의 가입비를 받고 있다. 이후 추가 관리비는 없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 모집 이후 보관료가 꾸준히 나가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규 가입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경영난을 겪게 된다"며 "웬만큼 보관건수가 되지 않으면 냉동을 위해 매일 채우는 질소값도 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보관업체에 문제가 생겨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지난 2005년 KT바이오시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며 540명의 제대혈이 보관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업체들이 '보관상태를 믿을 수 없다'며 보관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KT바이오시스 피해자측은 "회사측에 소송을 제기해도 금전적 보상 외에는 손실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더구나 제대혈이 손상됐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금전적 보상도 어렵다는 법률 자문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들은 지난해 회사측에 소송을 제기하려다 포기한 상태다. 피해자측은 "다른 제대혈 보관업체나 대학병원에서 제대혈 생사를 확인받아야 하는데, 이를 해주겠다는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KT바이오시스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제대혈을 방치해 두고 있지만 복지부는 관련 법조항이 없어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제대혈 보관을 하는 C사 관계자는 "KT바이오시스 같은 사례가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이런 회사들 때문에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우리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7대 국회에 상정됐던 제대혈 관리에 대한 법률안은 상임위서 폐기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안 처리순서에서 밀리면서 기한을 넘긴 것으로 안다"며 "법안의 시급성에 대해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다시 제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상황을 봐서 복지부가 직접 법안제정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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