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체감경기 "정말 어려워요"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08.07.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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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남의 한 소도시에 사는 김혜훈씨(33)는 이달부터 21개월 된 딸을 직접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교사를 아내로 둔 학원강사다. 지난달까지는 한달 33만원에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낮 시간 동안 대학원에 나가 공부를 했다. 그러나 빠듯한 월급에 오르는 기름값과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공부를 잠시 포기하기로 했다.

김씨 부부는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아 아반떼 수동 승용차를 교대로 이용해 출퇴근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휘발유값이 한달에 25만원이면 족했지만 지난달치를 계산해보니 34만원이 나왔다. 아파트를 사면서 받았던 대출의 이자는 2년 전 월 38만원을 내면 됐지만 점차 늘어 이번 달에는 50만여원을 내야 한다.



마트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살 때도 예전과 달리 가격을 한번씩 더 보게 된다. 그는 "우유값까지 오르면 신문이나 인터넷을 끊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 중산층을 상대로 재무컨설팅을 하고 있는 이호준씨(35)는 요즘이 영업을 시작한 이래 최악의 불경기라고 느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급 500만원 정도의 직장인을 상대로 컨설팅을 해 보면 평균 10%, 50만원 정도는 여유자금으로 잡혔다. 그는 이 자금으로 보험이나 펀드를 들 것을 권유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상담을 해 보면 대부분 여유자금이 0%에 가깝다. 차량유지비를 포함한 생활비가 10%포인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생활비 느는 추세를 볼 때 그가 생각하는 물가상승률은 10%를 넘어섰다. 그에 반비례해 그의 영업 실적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그는 "중산층이 이 정도라면 서민들의 여유자금은 마이너스로 잡힐 것"이라며 "실제로 생활비가 빠듯해진 이들이 가장 먼저 기존에 들었던 보험이나 펀드를 깨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3. 건설업체에 철재를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김범규씨(34)는 요즘 될 수 있으면 어음을 받지 않으려 한다. 올 상반기 원자재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그의 회사는 이전에 확보해 둔 재고가 많아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러나 주요 고객인 아파트 건설 하청업체의 어음 결제가 한두달씩 늦어지고 있어 조금 불안하다. 원자재 가격이 올랐지만 원청업체들이 공사비를 올려주지 않아 자금 사정이 나빠진 탓이다. 게다가 원자재 수급이 어려워 공정이 늦어지면서 제때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하청업체들도 많이 생겼다.

김씨는 "그나마 상반기에는 건설 물량이라도 많아 살 수 있었지만 하반기에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일감이 떨어지면 하청업체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우리 회사도 어떤 타격을 받을지 몰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제지표들은 결코 숫자 자체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워진 경제지표들의 영향은 이미 우리 주변에 두루 미치기 시작했다.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중산층은 저축과 투자를 줄인다. 사업하는 이들은 부도 여파를 걱정한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시작이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이 올 상반기 5.4%에서 하반기에는 3.9%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물가상승률은 상반기 4.3%에서 하반기 5.2%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다른 기관들의 예측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아직 외환위기때와 견줄 상황은 아니지만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초과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며 "정부와 국민, 정치권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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