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에 본 늦둥이 효자"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2008.07.0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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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의 품앗이, 노인장기요양보험<2-1>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에 앞서 2005년부터 3년간 전국 13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3차에 걸쳐 시범사업이 진행됐다. 이를 통해 65세 이상의 몸이 불편한 노인 2만3000여명이 지원을 받았다.

'이런 제도가 정말 가능할까'라며 우려반 희망반으로 참여한 가족들은 '가족의 웃음을 다시 찾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처럼 국내 노인 복지수준을 한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이들 대상자 가족들의 사례로 들여다봤다.

#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팔순에 본 늦둥이 효자"


부여에 사는 김OO씨의 아버지는 4년전 치매에 걸리면서 딴사람이 되었다. 대변, 음식물 등 각종 오물을 뒤집어 쓴 채 컴컴한 방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방문을 열면 코를 찌르는 심한 악취와 함께 까맣게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그런 아버지를 목욕시키는 일은 그야말로 '사투'였다. 180cm 장신인 아버지가 때리고 물고 도망치려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80세가 넘은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셌다. 아버지의 증세는 날로 심해졌다.

김씨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한 것은 관절염으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아버지 수발에 더욱 병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속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자식이 근처에 사는데 부모를 어떻게 저렇게 모시냐"며 수근댈때면 김씨의 마음은 턱 막혔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요양원은 꿈도 못꿨다.

그런 어느날 김씨에게 희소식이 들렸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시범사업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정말 그런 서비스가 있는지 반신반의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요양원에서 편히 계실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이 욕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1등급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지 한달. 김씨 아버지의 상태는 크게 호전됐다. 몰라보게 깔끔해진 모습에 스스로 수저를 이용해 식탁위의 간식을 들었다. 김씨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간식을 드시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4년전 병에 걸리기 전의 아버지를 다시 마주한 기분이었다"며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아버지를 돌봤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버지를 더 병들게 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씨 어머니의 생활도 안정을 찾아갔다. 정기적으로 보건소에 다니며 관절염 치료도 받는다. 부모님의 안정된 생활은 김씨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김씨는 장기요양요원 양성교육을 마치고 현장에서 직접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나이 팔순에 본 늦둥이 효자, 노인장기요양보험"

광주시에 사는 윤OO씨의 불행은 6년전 차남을 앞세우면서 시작됐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아내듣 척추마저 고장이 나더니 수술이 잘못돼 혼자서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팔순에 본 늦둥이 효자"
장성해 각기 가정을 꾸린 자식들을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결국 팔순 노인이 다 된 윤씨가 아내의 수족이 돼 수발을 들었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를 2년 가까이 혼자 수발해온 윤씨는 점차 한계를 느끼게 됐다. 힘도 딸리고 자유시간이 전혀 없는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매주 2회 이상 시키는 목욕이 가장 어려웠다. 움직일 수 없는 아내의 몸이 축 늘어져 있어서 쉽게 이동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또 아내는 변비가 심해 매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야 했지만 기저귀를 차기 싫어해 윤씨가 하루종일 붙어 있어야 했다.

윤씨는 "2년이라는 세월이 별거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세상을 정리해야 하는 인생황혼기에 아내의 수족이 되어 수발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날 윤씨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나온 소식지를 읽어보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시범사업에 신청했다. 이후 주 5회 1회당 4시간씩 요양보호사가 찾아왔다.

처음엔 낯선 사람에게 아내를 맡기는 것과 남이 수시로 집을 드다든다는 사실에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2개월간 서비스를 이용해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는 "힘들었던 2년을 충분히 보상받을 만큼 만족스러웠다"며 "물리적인 도움 뿐 아니라 아내와 말벗을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준 도우미는 멀리 떨어진 그 어느 자식보다 훌륭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제 요양보호사의 방문시간을 이용해 친구들도 만나고 산책도 다닌다. 그는 장기요양보험에 대해 "내게 희망의 나날을 주고, 나와 아내를 안심시켜주는 고마운 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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