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무계' 원유시장 혼란에 빠지다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8.06.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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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5弗이상 급등… 생산량 공포 저변에 깔려

국제 원유 시장이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방향성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시장 분위기에 휩쓸려 급등락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일(현지시간) 국제 원유 시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했다. 소폭의 금리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발언에 유가는 5달러 이상 급등하는 이상 장세를 보였다.



한마디로 지금 시장 상황을 보자면 이성이 결여된 혼란만이 있을 뿐이란 지적이 나올만 하다. 이날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7월인도분 유가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날보다 5.49달러(4.5%) 급등한 배럴당 128.01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3월 26일 이후 하루 상승폭으로는 최대 수준이다. 한때 유가는 6.08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7월인도분 유가 역시 런던 ICE 선물유럽거래소에서 전일대비 5.44달러(4.5%) 급등한 배럴당 127.54달러로 장을 마쳤다. 브렌트유는 지난해 12월 12일 이후 최대폭 상승한 것이다.



◇ 매장량과 생산에 대한 공포심 저변에 깔려

'황당무계' 원유시장 혼란에 빠지다


그렇다면 시장 상황이 왜 이렇게 혼란에 빠진 것인가. 투기 세력의 투기에 따른 시장 거품이 존재한다는 믿음도 있지만, 시장 저변에는 수급에 따른 혼란, 생산 설비 부족 등에 따른 장기 원유 공급 불안 등으로 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란 우려가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최근 득세하고 있는 '피크오일' 이론은 이러한 불안감을 잘 반영하고 있다. '피크오일' 이론가들은 이미 전세계 원유 생산량이 정점을 지나 하락단계를 걷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이 줄어든 것도 이러한 이유라는 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가는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가는 초고유가 시대가 열릴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발언이 현실이 될 가능성 마저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유가는 이미 연료유 가격을 높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피크오일'이 내세우는 것과같은 대재앙(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등)은 아닐지라도 시장은 이미 원유매장량의 상당부분을 소비해 버렸다. 앞으로 원유 시추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채굴하기 어려운 곳에 숨어있는 원유를 생산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해 유가는 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우려는 잠깐의 충격만 발생해도 유가를 끌어올릴 빌미를 제공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 유가, 올들에 달러 가치에 최대 좌우

MFC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칩 호지 이사는 "1년전만해도 지정학적불안정성이나 생산불안 등이 유가를 5달러 이상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유가를 이정도 끌어올릴 수 있는 합리적인 원인은 달러 약세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호지는 "펀더멘털은 이 유가 수준을 설명할 수 없다"면서 "수요는 고유가에 의해 영향받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은 유가 보조금을 줄이기 시작했다. 자동차 업체들도 기름을 많이 먹는 픽업트럭이나 SUV 생산을 줄이고 있다.

맥쿼리 선물의 노만 바라캇 수석부사장은 "이러한 급반등은 약달러에 따른 것"이라며 "유럽이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면 달러는 결국 하락세로 돌아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리셰 총재는 이날 금리를 4%로 동결한 직후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상황을 정밀하게 파악한 결과 다음 회의에선 금리를 소폭 상향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트리셰는 "그러나 금리 인상이 가능하지 확실하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필 플린 아라론 트레이딩 트레이더는 "지금 순간에 트리셰가 입을 열면서 달러가 하락하고 유가가 급등했다"면서 "통화정책은 올들어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한 동력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항공사들도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항공기 감축, 감원 등에 나서고 있다. 유나이티드에어웨이즈가 70대 항공편을 감축한다고 밝힌데 이어 컨티넨털에어라인 역시 18%의 항공기를 줄이고 30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사람들이 많은 유정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유가는 150, 200달러도 넘어설 것"이라며 "중요한 사실은 전세계는 원유를 빠른 속도로 소비하면서 원유 매장량을 줄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이날 뉴욕 증시는 상승세를 나타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모노라인인 MBIA와 암박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지만, 그동안 하락세에 따른 반발 매수세가 유입됐다. 세금환급 등 경기부양책 효과로 미국 소매업체들의 매출이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 이날 증시 반등 촉매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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