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한 민심, 촛불시위에 배후 있다면…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2008.05.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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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촛불집회에서 선두에 선 '예비군 부대' ⓒ최용민 이명근 기자↑ 29일 촛불집회에서 선두에 선 '예비군 부대' ⓒ최용민 이명근 기자


"인터넷 보고 왔어요"
5월2일 이후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에 참여자들을 취재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다. '소속'이 명확하지 않은 집회 참가자들을 취재하기란 다소 당황스러웠다.

배후는 유모차?...일면식 없어도 '우리'



29일 강릉에서 온 중학교 3학년생 '촛불소녀'는 "인터넷 생중계를 보고 힘을 보태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배후는 유모차"라던 엄마들의 외침은 다음 아고라와 각종 온라인 게시판으로 신속히 퍼져나갔다. '유모차 부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유에 과자를 사 들고 나온 한 30대 여성은 "아기들이 경찰에 둘러 쌓인 장면을 중계사이트에서 보고 달려 나왔다"고 울먹였다.



인터넷에서 의기투합한 예비군들은 일면식도 없이 만나 스크럼을 짜고 스스로 '인간방패'가 됐다. 예비역 중사라고 밝힌 네티즌은 "상황 끝난 줄 알고 조금 일찍 집에 들어왔다가 뒤늦게 연행 소식을 듣고 '울컥'했다"고 적었다.

촛불집회 취재가 쉽지 않은 건 시위대가 어디로 갈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로점거 가 시작된 24일 밤부터 연일 시위대는 명동, 을지로, 종로, 신촌 일대를 뛰어다녔지만 진로는 그때그때 결정됐다. 몇 갈래로 흩어지기도 하고 방향을 놓고 거리에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통제'가 가능한 조직적 시위와는 달랐다.

경찰도 "논의와 조율을 위해 대화할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촛불집회...온오프 넘나드는 축제의 장

산만해 보여도 그들 사이에 내부소통은 잘된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들고 시위 현장 곳곳에서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네티즌이 한둘이 아니다. 저녁 무렵 '아프리카'나 '라디오21'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어 '촛불'을 치면 수 십 개가 넘는 방이 나온다. 방마다 수 백 명이 모여 생방송을 함께 지켜보고 실시간 채팅을 나눈다.

'누가 어느 TV 토론프로그램에서 지금 무슨 말을 했다'는 소식 정도는 채팅과 다음 아고라 게시판, 문자메시지 등을 거치면 삽시간에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된다.

사정이 이러니 촛불시위의 배후라면 인터넷 밖에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온라인망, 탄탄한 IT 인프라가 바로 촛불이 뭉치게 하는 추동력이다.

그런데도 긴급 공안대책회의를 열고 배후가 의심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소통'이 힘들다.

지난 26일 어청수 경찰청장이 "(촛불집회는) 계획이 치밀했던 것 같다"는 발언을 하자 네티즌들은 "맞다. 종이컵 바닥에 구멍을 어떤 크기로 뚫을지 거기에 끼울 양초는 몇 센티미터 짜리로 살지 무척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코웃음 쳤다.

게다가 경찰버스에 태워져 연행되는 것을 '닭장차 투어'라 하며 풍자적으로 즐기고 있다. 지금의 촛불집회는 비장한 무거움보다는 발랄한 축제의 장이다.

저러다 말겠지?

물론 일각의 우려대로 시위대 속에는 '체제위협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기우다. '다함께'라는 운동단체가 촛불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기미가 보인다는 이유로 네티즌들한테 맹공을 당하고 심지어 주최 측이라 할 수 있는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도 이런저런 이유로 현장에서 항의를 받는 일이 다반사다. '배후'가 돼 보고 싶은 세력이 혹시 있다 해도 능력이 없다.

인터넷을 아예 없애버리면 모를까, 정부는 확실한 카드를 준비 해야 할 듯 하다.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도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아 수 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물러가라"를 외치는 상황이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행여 "저러다가 말겠지"라는 생각이 있다면 오산이 될 수 있다. 자칫 이 정부 자체가 '이러다 말아버리는' 수가 생길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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