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전화 한 통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5.02 13:48
글자크기

[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17대 대통령선거를 38일 앞둔 지난해 11월 11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탈당과 대선 출마로 어수선할 때다.

이명박(MB)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내 분란 속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어떤 말을 할지가 관심사였다.



MB는 머리를 숙였다. 발언 강도도 예상보다 높았다. "경선 이후 오늘에까지 당이 진정한 화합을 이루지 못했다. 그 모든 점은 제가 부족했던 탓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박근혜를 향해선 "정치적 리더십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정치적 파트너, 소중한 동반자"라고 한 것도 이 때다.



MB와 박근혜간 관계가 동반자로 정립된 시점이다. 당권-대권 분리와 공정 공천 등에 대한 약속도 했다. 강재섭 대표를 포함한 3자 정례 회동도 언급했다.

#지금 되짚어 보면 새롭다. 그 이후의 과정을 보면 더 그렇다. '동반자' '파트너'란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날 이후 반년 동안 이뤄진 둘 사이의 전화 통화는 세 차례. 공식 선거 운동에 돌입하기 전(11월25일)과 선거운동 마감 직후(12월18일), 그리고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12월21일)가 전부다.


모두 의례적인 통화다. 정치적 파트너로서 현안을 의논하거나 국정의 동반자로 의견을 구하기 위한 전화 통화는 없었다. 홍사덕의 말대로 "동반자 관계가 파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재섭, 박근혜와 함께 하는 3자 회동은 기획조차 되지 않았다. MB와 강재섭의 주례 회동도 이제 두 번 이뤄졌을 뿐이다.



국정의 동반자란 두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댄 것은 더 오래 전의 일이다. 박근혜가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뒤인 지난 1월23일, 방중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회동한 게 마지막이다. 2일로 꼭 100일이 됐다.

#'굿바이 여의도'. 3선 의원을 마지막으로 지난 총선에 출마하지 않은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낸 책이다. 이 책 뒷부분에 보면 MB에 대한 섭섭함이 숨김없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지난 1월3일 불출마 선언을 하기 전, 박근혜와 통화했다. MB에겐 당선자 비서실장이던 임태희 의원을 통해 불출마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인사 전화 한통이 없었단다. 책을 내는 지금까지도.



이에 대해 김용갑은 이런 소회를 밝혔다. "나를 그저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던 선배로만 기억하는지 이렇다 할 말 한마디가 없으니…".

"야속한 마음이 아니 들 수가 없었다. 여태 '잘 가시라'는 뒤늦은 인사 전화 한통이 없는 그를 보면서 이런 것도 '실용주의'에 기초한 것인가도 싶어진다".

박근혜의 속내도 비슷하지 않을까. 꼬일대로 꼬여 있는 MB와 박근혜. MB가 전화 한통 하는 게 먼저인 듯 싶다. 만난 지 100일이 됐으니 안부 차원으로라도 말이다.



MB는 최근 "핫라인(hot-line)으로 기업인 전화가 잘 오지 않는다"며 섭섭한 마음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 시간의 일부만 할애하면 될 일이다.

그 참에 '굿바이 여의도'를 선언하며 떠나는 선배 정치인 김용갑에게도 전화 한통 건네 그의 섭섭함도 풀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