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철형님이 사는 법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08.04.0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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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 기적을 일으키는 돈]<2-1>영철버거와 고대생들 ‘마음의 선순환’

↑이영철 영철버거 사장(왼쪽)과 고대 졸업생 임풍성씨.↑이영철 영철버거 사장(왼쪽)과 고대 졸업생 임풍성씨.


“영철이형한테 많이 배웠어요. 정신적 가치를.”

“그때 영철이형이 그러더라구요. 절대 돈을 좇지 마라.”

고영(32)씨는 말머리마다 ‘영철이형’을 거론했다. 고씨는 3년째 아름다운가게, 바리의꿈 등 사회적기업을 무료로 컨설팅하고 있는 컨설턴트다.



컨설턴트가 오죽 바쁜 직업인가. 그 바쁜 와중에 잠 잘 시간 줄여가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기부하고 어려운 이웃 돕느라 빚까지 끌어 쓰다니 얼마나 남다른 인물이겠는가.

그 속사연을 들으려 하는데, 그의 말은 자꾸 ‘영철이형’으로 흐른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고씨가 '영철이형'을 처음 만났다는 서울시 안암동 고려대 앞 영철버거로 갔다.



3월 22일 토요일 오후 5시 40분,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산을 접고 영철버거로 들어서니 아직 이른 저녁시간인데 대여섯 명의 청년들이 창가 앞 바(bar)에 제각각 기대서서 햄버거를 먹고 있다. 의자는 하나도 없다.

청년 한명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와 “스트리트버거 하나요”를 외친다. 청년이 계산대에 내민 돈은 1500원. 자동 음료기계에서 그가 뽑아 마신 콜라, 사이다는 공짜다.

청년이 햄버거 하나를 다 먹기도 전에 여중생 2명이 들어와 “영철버거요”를 외친다. '영철이형'을 기다리는 30여분 동안 20여명이 와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창가 앞에 줄줄이 놓인 상패 중 감사패 하나가 눈에 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2만 민족고대 학우들을 위해 맛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신 영철버거 아저씨께 고마운 마음을 모아 이 감사패를 드립니다. 2003년 5월 14일 36대 민족고대 총학생회."

'영철이형' 아니, 이영철(40) 영철버거 사장이 나타났다. "국민대에서 한 대학생이 찾아와 상담하느라 늦었다"면서 1.5평 남짓한 그의 사무공간으로 안내했다. 창업 상담을 받으러왔다는 그 학생은 인생상담을 받고 가는 듯했다.
↑영철버거 본점에서는 콜라와 <br>
사이다를 무료로 제공한다. <br>
인터넷 사용도 무료다.↑영철버거 본점에서는 콜라와
사이다를 무료로 제공한다.
인터넷 사용도 무료다.
다짜고짜 "돈 많이 버셨나"고 물었다. 그는 탁자 아래서 주섬주섬 은행통장 서너개를 꺼내 펼쳤다.



3월 중순 날짜가 찍힌 통장들의 잔고는 모두 마이너스. 통장에 찍힌 빚만 4200여만원이었다. 지난해 영철버거 고대 본점 인테리어를 고치는 와중에도 기부 약속을 지키느라 빚을 썼단다.

그는 2004년부터 매년 2000만원씩 지금까지 총 1억200만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200만원'은 그의 뜻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고영, 임풍성, 장세읍, 허윤창 등 고대 졸업생들이 모아 보탰다. 고려대는 이씨의 기부금으로 해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 10명을 선정해 장학금으로 전했다.

"아내요? 15년 같이 살면서 10년은 원망 들었죠. 이제는 자기가 시집 잘 왔다고 해요. 허어, 허어, 허어."



하회탈처럼 파안대소하는 이 사장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 중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는 11살 때 서울로 혈혈단신 올라왔다.

목걸이 공장, 중국집, 악세사리 회사를 거쳐 공사장 막노동판으로 흘러든 어느 날, 그는 발을 헛디뎠다. 허리를 다쳤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부부는 쌀이 없어 밥 한 공기를 반으로 나눠 물을 붓고 죽을 쒀먹어야 했다.

그때 그의 나이 만 32세. 신용불량자가 된 그는 처갓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고대 앞 노점을 시작했다.



1평도 안 되는 손수레에서 시작한 영철버거는 문 없는 6평짜리 점포를 거쳐 현재 16평짜리 점포로 자리를 늘렸다. 서울 종로엔 직영점을 냈다. '영철버거' 간판을 단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현재 10곳이다.

그의 성공담이 알려지면서 그는 언론보도를 통해 유명인사가 됐다. 2005년엔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해냄출판사)'라는 에세이집도 펴냈다.

남 보기엔 번듯하게 성공했지만 그는 지금도 매일 16~17시간 동안 점포에서 일한다. 인터뷰일에도 새벽 7시 가까이 양배추를 썰다가 9시에 잠들어 오후 1시에 점포로 나왔다고 했다.



돈 벌었으면 남 돕기 전에 내 몸 편하게 쉬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더구나 그에겐 아내와 1녀2남의 자녀가 있다. 막내를 낳은지는 15개월밖에 안 됐다.

하지만 그는 "가정사 모든 싸움의 불씨가 '돈'이었다"며 "집안 싸움이 없는 돈으로 시작해서 없는 돈으로 끝나는 걸 보면서 '이 놈의 돈 벌기만하면 줘버려야지' 결심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가 '맘을 비우게 된' 사건은 따로 있었다. 그가 고대에 장학금 기부를 시작하기 전인 2003년 정도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새벽, 한 고대생이 친구와 술 마시고 찾아왔다. "아저씨, 저 하버드대로 유학 가요"하면서.



"그 학생 말이, 하숙집 아주머니와 술을 마시다가 이런 말을 들었대요. '공부는 하버드에서 배우고, 인생은 영철이 아저씨한테 배워라.' 제 속에서 30년 동안 쌓인 뭔가가 무너지더군요."

그 전까지 그는 고대생이라는 벽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 학생의 말을 듣고 그는 '내가 누구한테 감히 인생을 가르치고 꿈을 줄 수 있는 존재일까'라고 속으로 반문했다.
↑고대 총학생회가 이영철 사장에게<br>
준 감사패(위). 영철버거는 초심을 <br>
잃지 않겠다는 상징적 의미로, 주력<br>
햄버거 가격을 1000원으로 유지하다가<br>
최근 원가를 반영해 1500원으로 <br>
인상했다(아래).↑고대 총학생회가 이영철 사장에게
준 감사패(위). 영철버거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상징적 의미로, 주력
햄버거 가격을 1000원으로 유지하다가
최근 원가를 반영해 1500원으로
인상했다(아래).
"저는 그저 어려운 환경을 어쩔 수 없이 헤쳐나가야 해서 살아왔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결심했죠. 여기선(대학 앞) 욕심 부리면 안 되겠다."

그때 사법연수생 임풍성(33)씨가 들어왔다. "영철이형이 인터뷰하는 데 좀 도와달라고 해서" 부인과 데이트를 마치자 마자 뛰어왔다고 했다. 사법 고시생 생활 6~7년 동안 임씨는 '형님'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새벽 2시에 하숙집으로 돌아갈 때 보면 형님이 점포 바닥에 뜨거운 물을 붓고 학생들이 먹은 자리를 리듬감 있게 싹싹 빗자루질 하고 있어요. 신나보였죠. 제가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들어가는 새벽엔 그 모습을 보기 부끄러워 멀리 돌아들어가기도 했어요."

임씨가 그를 남달리 모시는 데에도 사연이 있었다. 어느 새벽, 임씨는 그에게 "가난한 후배가 집안 형편 때문에 고시를 포기하게 됐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탄했다. 가만히 듣던 그는 이후 1년 동안 월 50만원을 고학생에게 지원했다. 아무 조건 없이.

"형님은 돈이 아니라 맘을 줍니다. 맘을. 남들은 형님이 돈 벌어서 점포 늘렸다고 하지만 사실 노점상하다가 몰려서, 점포 주인이 나가래서, 어쩔 수 없이 옮긴 겁니다. 형님 기사 쓸 때 꼭 써주세요. 형님께 배울 건 '성공'이 아니라 '의리'라고."



이 사장과 고대생들의 끈끈한 정은 20여년 전 '천일악세사리'라는 작은 회사에서 시작됐다. 그는 "고려대 출신 임현규 과장님이 거친 나를 사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소식이 끊인 임 과장을 언젠간 만나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고도 했다. 따뜻한 마음은 20년을 돌고 돌아 지금도 돈다.

◇영철 형님 어록
- "진심이면 안 되는 게 없다." 아내 이계숙씨를 19세에 처음 만나 6년 동안 싸우면서 사귄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면서.
- "내가 하루 두끼 먹는데, 인제 하루 한끼 먹을란다" 임풍성씨의 가난한 후배한테 월 50만원씩 지원을 시작하면서.
- “내가 못 배워서 다행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정치 혼란 일으키는 걸 방송뉴스에서 보면서.
- “천사 마케팅? 못하는 사람이 바보다.”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가 장삿속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에.
- “천사가 만들어도 맛 없으면 안 먹는다.” 천사마케팅을 했는데도 실패했다는 자영업자를 만났을 때.
- “혼이 그냥 나오냐?” 영철버거 성공의 비결은 햄버거에 ‘자신의 삶'을 담은 데에 있다면서.
- “난 일이 다 잘 되면 불안해. 걱정거리가 적당~히 있어야 잘 살고 있구나, 싶어.” 자신은 어려서부터 늘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다면서.
- “사람이 재산인거지.” 장학금 등 기부를 하느라 4000여만원을 빚진 데 대해.
- “돈으로 어찌 안 되는 게 사람 맘이야.” 돈을 기부하거나 준다고 사람의 맘까지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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