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90일' 1등 기업의 좌절

오동희 김진형 기자 2008.03.0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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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특검 60일이 남긴 것..수사편의만 고려, 국세청등 반발도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오는 9일로 60일간의 1차 수사기간을 종료한다. 그동안 특검이 진행해온 광범위한 저인망식 수사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뿐만아니라 법리면에서도 무리한 측면이 많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특검이 수사기간을 오는 4월 8일까지 30일간 더 연장키로 해 이같은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특검은 지난 1월 10일 출범 이후 4일만인 14일부터 이건희 삼성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승지원과 이태원동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이학수 전략기획실 실장 등 삼성 그룹 임원들과 직원들을 무더기 소환했다.



◇사장단 줄소환과 압수수색=특검은 1월 18일 성영목 호텔신라 사장을 시작으로 지난 3일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소환까지 두달간 20여명의 전현직 사장들을 줄소환했고, 이미 소환됐던 사장들의 2차 소환이 줄을 잇고 있다.

특검은 이태원동 이건희 회장의 자택과 집무실인 승지원, 그리고 삼성본관의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에버랜드 창고, 삼성화재 을지로 본사 및 삼성증권 전산센터, 삼성증권 태평로 지점의 계좌추적작업, 서미갤러리 조사, 금감원, 국세청, 이학수 실장과 김인주 사장 자택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대상을 특정하지 않는 '저인망식 수사'가 기업의 생존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검과 국세청간에 법리논쟁도 벌어졌다. 국세청은 납세자의 비밀보호를 명분으로, 특검은 특검법이 정한 권한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재산 내역의 공개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 공방의 핵심은 특검의 저인망식 수사로 귀결된다.

◇국세청은 왜 반기를 들었나=특검은 국세청에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일가의 과세내역과 함께 부동산 보유 내역 및 주식보유 현황 자료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국세청이 이를 거부했다. 이에 대응, 특검은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고 이 중 일부는 기각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국세청은 "국세기본법 제81조 10(비밀유지) 제1항에 따라 과세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가 금지돼 있다"며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국세청은 영장을 제시하면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검이 법원에 이 회장 일가의 재산내역 공개를 요청하는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영장내용이 '포괄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법원이 일부만 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검은 일반적으로 특별법과 일반법이 상충될 때는 특별법이 우선한다는 법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특별법이 우선이냐 일반법이 우선이냐의 여부는 공통된 대상을 규율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다"며 "같은 카테고리가 아닐 경우 특별법에 그 내용을 담고 있느냐가 우선된다"고 말했다. 특별검사법과 국세기본법은 상호 규율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법이 우선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특별검사법에 계좌추적이나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규정이 있을 경우 이를 근거로 요청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고 이를 통한 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업 현실도 감안해야=특검은 많은 수사 대상에 대해 일일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 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사 편의를 위해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특검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하고, 포크레인이 아닌 호미로 땅을 파다보니 이런 일이 있다"며 "특검이 유례없이 민간기업을 수사대상으로 하다보니 강제수단이 많지 않고, 그런 이유로 이것저것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전경련 이승철 전무는 "결국 재계가 우려하는 대로 특검의 방향이 흘러가고 있다"며 "조속한 시일내에 수사를 마무리해주기를 바란 것이 재계의 입장이었지만, 그동안 그렇게 밑바닥까지 뒤지고 나서 또 다시 수사 기한을 연장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심각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조준웅 특검은 지난 1월 출범식에서 "의혹을 밝힌다는 게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는 모든 내용을 속시원히 밝힌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현재의 특검 수사가 조특검의 말대로 진행되고 있는 지에 대해 재계는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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