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해결? 학부모 등골 '꼬부랑'

머니투데이 오상연 기자 2008.02.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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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교육' 쟁점해부 ④사교육비 절감 방안 논란

영어교육 강화, 고교 다양화, 대입 3단계 자율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이 내놓은 다양한 교육 정책의 목표는 오직 하나, ‘사교육 문제 해결’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몰입식교육'이 사교육 근절방안의 대표적 대안이다. 자율형 사립고 등 고등학교 300개를 설립해 학생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겠다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모두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 수요를 줄여보겠다는 취지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도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과 관련, “대학 입시에 관한 권한을 대학 자율에 맡김으로써 정부는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줄이는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새 정부 교육정책의 목적이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영어로 수업하면 사교육 덜 받는다고?



사교육비 절감을 목표로 한 새 교육정책 가운데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온 것이 ‘영어 공교육 강화’다.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는 인수위가 추진 중인 영어 몰입교육을 '시장주의 탈레반’에 비유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2008 영어 괴담’이라는 사회 풍자물이 떠돌 정도다.

▲디시인사이드 게시물 캡쳐화면▲디시인사이드 게시물 캡쳐화면


한국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 교육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기준으로 1년 평균 사교육비 규모는 33조5000억원에 달했고 이 중 영어 사교육비가 15조원으로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이같은 현실에 비춰 인수위는 향후 5년간 총 4조원을 투입해 영어 교과 교원, 교육과정 등의 종합적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가장 시급한 교원확충의 경우 1조7000억원의 국고지원을 통해 영어전용 교사 2만3000명을 2013년까지 신규 채용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렇다면 영어 공교육 강화가 사교육비 절감을 불러올 수 있을까? 영어 공교육이 강화되더라도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교육 전문가와 일선 교사들의 견해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현재의 영어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 만큼 개선이 시급하지만 국가가 이를 완벽하게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 축소라는 두 요인을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교육 수요자의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족스러운 영어 교육을 실시하기에는 학생 간 실력 격차가 적지 않은 탓이다.

서울 목동 지역의 한 영어학원 관계자는 "이번 영어교육 방침으로 오히려 사교육 시장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진전된 공교육이 이뤄져도 거기서 미처 채우지 못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가는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목고, 사교육 열풍 부채질할 수도"

영어 공교육 강화의 또 다른 걸림돌은 학급당 학생수인데, 그 대안으로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부각되고 있다.

당초 인수위는 영어 말하기ㆍ쓰기 수업 강화를 위해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에서 23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학급당 인원수 감축은 쉽지 않은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학급당 학생수는 2010년 초등학교 29.1명, 중학교 34.1명에서 2012년에는 초등학교 28명, 중학교 33.2명이 소폭 줄어들 전망이다. 학급당 학생수를 12명 줄이는데 초등학교는 17년, 중학교와 일반계고는 각각 12년씩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이 힘있게 추진될 경우 학급당 학생 수를 손쉽게 줄일 수 있는 자립형 사립고 등 특목고들이 수월성 교육 측면에서 유리하다.

때마침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를 내놨다. 150개의 기숙형 공립학교, 100개의 자율운영 사립고, 학생의 특기와 적성을 살릴 수 있는 50개의 마이스터교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조전혁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위 자문위원은 "사교육이나 해외유학 증가 문제는 교육 수요를 억눌러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며 "공급을 풀어줘 각자의 처지와 교육관에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학교에 대한 선택권을 높여 주는 '고교 300프로젝트'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목고의 증가로 중학교 때부터 학생들이 입시 경쟁에 시달리게 되고, 중학생부터 과열교육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만중 전교조 정책실장은 "평준화가 안 됐던 30여년 전에도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재수하는 중학생들이 많았다"며 "특목고나 자율형 사립고가 늘어나면 초등학교, 중학교 단계에서 사교육을 통한 고교 진학 준비로 전체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 문제 해결, '입시제도' 개편부터

한편 자사고가 늘어나면 그동안 특목고에 들어갈 성적이 안 돼 입학을 포기한 중간 계층 학생들까지 자사고 입학 대열에 뛰어들어 사교육 시장이 더욱 확대될 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분당 지역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 교사는 "여러 종류의 고등학교를 다수 설립해 학교교육이 다양화되는 것은 좋지만 경제적 여건이 있는 지역의 학부모라면 학교에서 충족되지 않는 고입 대비를 위해 사교육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사고들이 명문대 입학 실적을 놓고 경쟁에 들어간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입 경쟁이라는 현실적인 '시장'에서 '합격자수'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학교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관행이 깨트려 지지 않는 한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다.

최낙운 교육과시민사회 교육자치위원장은 "대입 자율화 3단계 방안이 실시되면 대학 입시에 대한 권한은 온전히 대학으로 넘어간다"며 "고교교육과정에서 학생 평가가 이뤄진다면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교육은 팽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학에 자율권을 준다고 해도 입시 전형의 다양한 경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학생이나 학부모의 부담은 줄어들 수 없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대학의 다양한 입시 제도, 고등학교에 필요한 교육 과정에 대비하는 교육계 내부의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용식 전북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는 "제도적인 문제만 이슈화 되다 보니 교육계 내부의 반성은 소홀히 되는 것 같다"며 "교사나 학교 경영자들이 학교 경쟁력 차원에서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방과 후 학교 운영을 통해 사교육 수요를 학교 내로 끌어오고 학교 공간을 이용해 외부 강사의 보충 수업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등 근본적으로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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