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자율'이면 만사형통?

머니투데이 오상연 기자 2008.01.24 10:00
글자크기

'이명박 교육' 쟁점해부 ②대학으로 칼자루 넘긴 입시제도

편집자주 10년만의 정권교체로 교육정책에 일대 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지난 1973년 채택된 이래 35년 동안 한국 교육의 핵심가치로 작용해 온 평준화 정책이 새 정부 들어 단계적으로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한국 교육계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지만, 새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은 ‘BBK 공방’에 매몰돼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2월초 교육개혁구상 발표를 앞두고 각계 의견수렴에 들어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행보에 맞춰 ‘이명박 교육정책’의 쟁점들을 8차례에 걸쳐 분석해 보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①교육정보 공개, 어디까지? ②대학, 정말 본고사 안볼까? ③교육과정 자율화, 어떻게? ④학원 투명화 대책 나오나? ⑤교육부 기능개편, 어떻게? ⑥교원능력 향상, 어떻게? ⑦지역교육청 없애고 나면? ⑧사학법, 다시 손댈까?

'자율'은 교육 문제를 해결할 키워드가 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 만큼은 자율만이 고질적인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규제 일변도의 입시 정책이 대학 자율에 맡겨지면 학교별 특성을 살린 다양한 입시안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그러나 학생 선발권을 대학 자율에 넘기는 방식은 결국 점수에 의한 서열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규제 없이 대학 자율로 진행하는 입시 제도가 어떻게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해 나갈 것인가도 논란거리다.



◇'칼자루' 쥐게 될 대학들, '등급' 대신 선택할 것은?

수능 등급제는 지난 22일 인수위가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공식 발표하면서 시행 1년만에 사실상 폐지가 확정됐다.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은 이 날 "본고사와 논술 기준은 대학협의체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틀 내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마련할 것"이라며 본고사 부활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키려 했다.


그러나 `자율 규제를 통해 본고사를 금지한다'는 것은 `대입 완전 자율화'와는 모순되는 방침이다.

대교협이 마련한 규제를 거스르는 대학이 교육부로부터 조치를 받는다면 여전히 교육부가 대입제도 권한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돼 해당 대학과의 마찰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등급제를 폐지하면 정시 전형에서 본고사를 보지 않겠다"던 대학들은 현재 수능 등급과 함께 원점수와 표준점수 등 보다 세밀한 자료를 입학전형에서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능의 원점수와 표준점수 활용으로 결국 '점수에 따른 줄세우기'를 근간으로 하는 기존의 입시 전형을 답습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불가피하게 됐다.

최병기 영등포여고 교사는 "수능을 근간으로 하는 입시는 교육부나 정부가 통제하던 과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사는 "등급제는 수능 성적을 최소 비중으로 하고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학생 평가 등 다양한 대학별 전형방법을 계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등급제 도입에도 2008 대입전형 확정 발표 결과 거의 대부분 대학은 학생부 반영률을 높였지만 소위 명문대들은 20% 내외의 반영률을 고집해 도입 의도는 살아나지 못했다.

유병화 비타에듀 이사는 "학교별 격차를 고려하지 못하는 내신 성적 대신 여전히 수능 점수를 그나마 믿을만한 자료로 신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내신 등 각 전형 요소별 반영 비율도 대학 자율에 맡겨지면서 수능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수위 자문위원인 김성열 경남대 교수는 "단기간에는 어렵겠지만 '대학강국 프로젝트'의 추진으로 대학들이 연구중심, 지역사회연계 중심 등 특성화 시스템을 갖추면 수능 점수에 따른 대학 서열화도 약화돼 대학별 특성에 맞는 전형제도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같은 취지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입시는 대학 뿐 아니라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인수위와 대학 입장을 위주로 한 결정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검증된 바는 없다.

두영택 뉴라이트교사연합 상임대표는 "인수위의 방침은 현실에 기반을 둔 실현 가능성에 대한 타진이 부족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논란으로 남은 문제들

지역별, 학교별 격차를 반영하지 않은 내신이나 일회성의 한계를 가진 수능 성적은 학생 평가를 위한 충분한 변별 요소로 인정 받지 못했다.

21일 발표된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에서는 이같은 수능의 일회성과 학생 부담에 대한 대안으로 수능 과목의 점진적 축소와 영어시험 상시화를 제시했다.

'자율화 방안'에 따르면 2013학년도 입시부터 영어 과목은 수능에서 분리해 언제나 응시할 수 있는 별도의 능력평가로 전환하고 수능 응시과목은 단계적으로 최대 4개로 줄여나가게 된다.

이돈희 민족사관학교 교장은 "영어만이 아니라 다른 과목들도 능력평가제로 전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환영하면서도 "수능 과목 수를 줄이는 것이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제했다.

수능 과목 축소가 대학 측의 학생 선발 방식으로는 수월성을 가져올 수 있으나 입시 과목이 아닌 교과의 부실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남정 교육선진화운동본부 공동대표는 "학교 내에서 입시 과목 위주의 교과 이기주의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장 등이 주도가 된 교육현장 차원의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경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23일 "달라질 수능 제도로 사교육 시장이 쉽게 위축된다고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이 애널리스트는 "축소된 수능 과목은 내신으로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우수학교 대거 설립으로 내신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또 다른 형태의 공교육 부실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당장 수험생이 되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혼란 상태에 빠졌다.

임병욱 인창고 교육연구부장은 "교육부가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인다고 해 고등학교 1,2학년때부터 내신에 공을 들였던 학생들로써는 중상위권 대학들을 중심으로 수능 비중을 대폭 높일 것을 예상하고 허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교사는 "수시전형까지는 몇 개월 남지도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수험전략을 짜야 할 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편입학 부정 등으로 도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학들이 어떻게 공정한 입시제도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정일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대입에 대한 사후 통제와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 "원론적인 차원이지만 대교협에 사법적인 권한을 주자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