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 해체…개혁이냐 공교육 붕괴냐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8.01.2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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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교육' 쟁점해부 ①교육정보공개 어디까지

편집자주 10년만의 정권교체로 교육정책에 일대 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지난 1973년 채택된 이래 35년 동안 한국 교육의 핵심가치로 작용해 온 평준화 정책이 새 정부 들어 단계적으로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한국 교육계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지만, 새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은 ‘BBK 공방’에 매몰돼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2월초 교육개혁구상 발표를 앞두고 각계 의견수렴에 들어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행보에 맞춰 ‘이명박 교육정책’의 쟁점들을 8차례에 걸쳐 분석해 보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①교육정보 공개, 어디까지? ②대학, 정말 본고사 안볼까? ③교육과정 자율화, 어떻게? ④학원 투명화 대책 나오나? ⑤교육부 기능개편, 어떻게? ⑥교원능력 향상, 어떻게? ⑦지역교육청 없애고 나면? ⑧사학법, 다시 손댈까?

2005년말,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됐다. 소송의 내용은 수능성적 원 데이터와 초ㆍ중ㆍ고생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하라는 요구였다. 서울지방법원은 2006년 9월 수능 성적은 공개하되 학업성취도 자료는 공개하지 말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수능 성적 공개시 고교 서열화로 평준화의 의미가 퇴색된다며 법원 판결에 불복,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하지만 고법은 한 술 더 떠 학업성취도 결과까지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교육부는 이에 다시 상고,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정보를 공개하라며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는 조전혁 인천대 교수, 이명희 공주대 교수,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등이다. 이들은 평준화 정책이 한국 교육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신념 아래 6년 넘게 거대 교육부와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다. 최근까지 이들의 시도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 무모해 보였지만 10년만의 정권 교체로 이들은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되고 있다.



소송 당시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 대표였던 조 교수는 현재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상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고 현재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 대표인 이 교수 역시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는 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 시절이던 지난 2004년 이주호 KDI 연구원(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 등과 '평준화 정책이 학업 성취를 저해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가 평가원으로부터 '불법 자료 유출' 혐의로 고소당했던 사람이다.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신 대표 역시 정권 교체 공신으로 인정받아 김근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도봉갑에서 총선 출마를 채비 중이다.

이들은 왜 교육정보 공개를 두고 법정싸움까지 벌였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교육정보 공개는 평준화의 틀을 깨는 핵심 도구이기 때문이다. 수능 원자료와 성취도 평가결과 등이 공개되면 전국 지역별 1등 고교와 꼴찌 고교가 드러나게 된다. 3불정책의 하나인 고교등급제 불가 원칙이 자연스레 허물어지는 것이다.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명희 교수는 "교육정보 공개는 현대사회에서 논쟁거리도 안 된다"며 "당연히 학교 단위의 정보까지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이들의 개인정보까지 공개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학교는 공적 기관이므로 학교가 한 일, 또 이에 대한 평가인 학업성취 결과 등을 학부모의 참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 등 평준화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다양한 정보 공개를 통해 교육개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정확하고 실증적인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교육개혁 논의는 이념 논쟁에 그쳤고 그 사이 학교 폭력, 급식 문제, 내신 부풀리기 등 학교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는 지적이다. 교육당국이 정보를 독점하는 폐쇄적 시스템이 개선돼야 교육격차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교육정보 공개는 초ㆍ중등 부문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서울대 입학생들의 수능 성적, 출신 지역, 특목고 비율 등이 상세히 공개되면 이른바 '있는 집' 아이들의 서울대 진학률이 정말 높은지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 신입생 충원율과 취업률, 연구성과, 예ㆍ결산내역 등이 공개되면 경쟁력 없는 대학들의 경우 퇴출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보 공개 문제는 대학의 사회적 책무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며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를 정확히 짚어내고 대학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공개적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정보 공개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강조하는 대학의 사회적 책무도 정보공개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보 공개에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학력평가 결과를 공개하면 고교 서열이 매겨지고 이렇게 되면 학교가 성적 지상주의로 운영될 수밖에 없어 가뜩이나 부족한 인성교육은 아예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성적 경쟁이 더 치열해져 사교육비도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학교간, 지역간 격차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격차가 공개되는 순간 소외학교는 더 소외돼 교육이 완전히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개를 하더라도 다양한 지원을 통해 학교간 격차를 좁혀 똑같이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해야 한다"며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 상태에서 정보를 공개하면 전혀 도움이 안 되고 부작용만 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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