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된다고 선진화 아니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1.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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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신년 인터뷰]<1>

"속된 말로 '부자되는 것'이 선진화는 아니다.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가 많이 나서 부자가 된 나라들을 아무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국제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반신자유주의' 학자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경제학부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아젠다인 '선진화'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부자된다고 선진화 아니다"


장 교수는 신년을 앞두고 31일 머니투데이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선진화된다는 것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실용주의를 이야기하는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도 '어떤 것은 무조건 옳다' 는 '이념적' 태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장 교수와의 이메일 인터뷰 내용

-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중국의 성장둔화 및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내년 세계경제가 올해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들이 많은데.
▶ 지금 세계경제는 하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개방의 정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악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걱정되는 것은 경기하강의 정도가 얼마나 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세계경제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떠오른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부실채권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기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워낙 금융공학이 발달되다 보니 주택담보 대출 채권을 조각조각 내어 다른 채권과 합쳐 상품을 만들어 세계에 팔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시티그룹이나 메릴린치 등 미국 금융기관들뿐 아니라 스위스의 UBS, 프랑스의 아그리콜 등 유럽 금융기관들도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서브프라임 채권을 많이 사지 않았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상태에서 미국 유럽 등의 주요국의 자본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나라에도 막대한 영향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 '선진화'를 아젠다로 내세운 이명박 후보가 최근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선진화'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속된 말로 '부자되는 것'이 선진화는 아니다.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가 많이 나서 부자가 된 나라들을 아무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선진국이라는 것은 고급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제도가 잘 정비된 나라를 뜻한다. 이런 고급 지식과 제도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미국화'만 선진화는 아니다. 여러 가지 가능한 길이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화된다는 것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더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 이명박 당선자는 '실용정부'를 모토로 내걸었다.
▶ 나 역시 실용주의자여서 그 모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진정한 실용주의 정부가 되려면 자신들이 이념에 묶여 있는 면은 없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한편으로 실용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 나오는 '작은 정부', '민영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대한 발언을 보면 '어떤 것은 무조건 옳다' 는 '이념적' 태도가 엿보인다. 진정한 실용주의라면 어떤 것도 항상 옳거나 그른 것은 없다는 태도를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처럼 한편으로는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도하면서도 토지는 모두 국유화하고 대부분의 주요 기업을 공기업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가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잡은 지 10년이 지났다. 그에 대해 평가한다면.
▶ 이 이야기는 너무 자주 해서 또 하면 '늘 같은 소리만 한다'고 할 것 같은데... 지난 10년간 우리가 추구해 온 노선은 투자를 둔화시키고 불평등을 가중시켜 우리 경제의 장기적 전망을 어둡게 했다.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같은 면에서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면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다고 본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것은 환상이다. 외국자본이라도 좋은 기술 전수해 주고 경쟁력을 키워주는 자본이라면 환영해야 하지만, 지난 10여년 간 우리나라에 들어온 대부분의 외국자본은 단기적 금융수익을 노린 것들이었다.

- 이명박 당선자도 참여정부과 마찬가지로 FTA의 확대를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다.
▶ 모든 정책이 그렇듯, 자유무역도 경우에 따라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자유무역을 하면 시장이 확대되고 경쟁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돼 서로 득을 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우리보다 생산성이 3배 가량 높은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과 자유무역을 하면 생산성이 향상되기 전에 우리 기업들이 도태될 확률이 높아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노무현 정부는 마치 FTA를 안 하면 우리나라가 북한이나 쿠바 같이 고립될 것처럼 국민을 윽박질렀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고도로 개방돼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있는 나라다. 미국이나 유럽과 FTA 안 한다고 세계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 자유무역론자인 바그와티 콜럼비아대 교수까지 다자적 무역질서를 해친다며 양자 및 지역차원의 FTA에 반대하는 마당에 우리가 먼저 나서 국제질서를 어지럽히고, 별 이익도 못 보는 FTA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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