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SEWA의 코디네이터 닐람씨가 촬영이 서툰 새내기 멤버에게 카메라 잡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가 만든 '나의 인생, 나의 일(My life, My work)'이 필름 페스티벌에서 1등 상을 받았어요!"
'비디오SEWA'의 팀원 9명은 다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카메라 같은 장비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빈곤여성들이었다. 닐라 단타네씨는 채소 장사, 아루나 파르마씨는 옷에 무늬 찍는 사람이었고, 만자우라 라발씨는 머리에 옷을 지고 옮기는 짐꾼이었다. 이들이 세계적 영화제에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VVN은 저개발굴 문맹 주민들에게 촬영기술을 가르쳐 잠재력을 일깨운다. 아프리카 말리에서 시작한 이 단체는 지금 중국, 인도, 이집트, 인도네시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VVN의 3주간 워크숍이 끝난 후 인도의 빈곤여성들은 '비디오SEWA'를 만들었고 그들은 당당하게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남녀 차별이 더욱 심했을 23년 전, 사리(결혼한 여성이 입는 긴 옷)를 입고 거리 한 복판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여자들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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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남녀의 역할 구분이 엄격하다. 교육 받은 여자조차 카메라를 만지려 하면 "여자는 카메라 앞에 서 있어야지 뒤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경고를 듣는다. '비디오SEWA'의 문맹여성들에게 사회 편견은 카메라 조작법 따위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우리는 비디오SEWA의 첫 작품, '마넥초크(Manek Chowk)'를 관람했다. 아흐메다바드 마넥초크 시장의 야채 노점상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카메라는 시선 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단조로운 나레이션만으로 줄거리가 이어졌다. 상영시간 20분 내내 계속 불안하게 흔들리는 화면 탓에 우리는 눈이 아팠다.
반면, SEWA를 통해 삶을 변화시킨 여성들의 일상을 다룬 최신작 '나의 인생, 나의 일'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능숙한 촬영과 흥미진진한 시선 이동, 매끄러운 편집까지. 20여년 동안 얼마나 팀원들이 발전했는가를 한 컷, 한 컷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비디오SEWA' 팀이 한 빈곤 여성을 인터뷰하고 있다.
마이크를 든 이는 채소 노점상인 출신의 팀원,
닐라 단타네씨,
마이크를 든 이는 채소 노점상인 출신의 팀원,
닐라 단타네씨,
"처음엔 기계를 만지는 것이 무서웠어요. 저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거든요. 그러나 비디오 장비를 다루는 방법을 배운 뒤 많은 사람들과 제가 익힌 기술을 나누고 있어요."
카메라는 이들의 경제력도 높였다. 비디오 촬영을 교육 받은 여성은 신용협동조합인 'SEWA은행'을 통해 무담보소액대출을 받아 카메라를 사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마을 행사, 결혼식 같은 장면을 찍어주고 돈을 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디오SEWA는 카메라 촬영 교육비를 훈련생의 환경, 소득에 따라 다르게 책정했다. 가난한 여성에겐 교육비가 거의 무료다.
비디오SEWA는 2000년 일종의 사회적기업으로 재출범했다. 회사 지분은 여성회원 200명이 나누어 가졌다. 이는 '인도에서도 가난한 여성이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
수익은 다큐멘터리 판매, 비디오 촬영 교육 훈련비, 비디오 상영을 통해 얻는다. BBC, UNDP(국제연합개발계획), ILO(국제 노동기구) 같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들이 이들의 주요고객이다.
재무적으로는 아직 다른 기구나 기부자의 원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닐람씨는 "비디오 테이프를 개당 1000루피(약 2만4000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장비 구입과 수리비용, 임금을 지불하기에도 벅차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비디오SEWA의 필름이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도 경찰을 피해 채소를 들고 뛰어가는 여성들을 보면 안쓰러워요. 하지만 우리는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있어요. 이것이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비디오SEWA 사무실의 각종 첨단 기기들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촬영해온 필름을 편집하고 있는 한 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