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이회창과 그들의 나라

머니투데이 박형기 국제부장 2007.11.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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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이회창과 그들의 나라


"이회창이 나오면 여권에도 희망이 있지라우”

지난 주말 광주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대뜸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기자는 주말부부로 매주 광주에 내려간다)

그는 곧이어 “정동영을 찍어야 할께라, 문국현을 찍어야 할께라”라고 물어왔다. 대답을 망설였더니 “정동영은 옷만 바꿔 입었을 뿐 무능세력의 대표고, 문국현은 신선하긴 하지만 검증이 되지 않아서 아심찮다(못미덥다)”고 말했다.



기자도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5.18의 한 주역이었던 광주 택시 기사들의 정치수준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7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다고 한다. 그의 출마로 인해 대선은 하나마나한 게임에서 해볼만한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 이회창의 출마는 지리멸렬한 여권을 결집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일 경우, 여권은 단일화를 해도 안 되기 때문에 단일화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범여권 후보들은 어차피 대통령이 안 될 것이라면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각개약진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나와 야권이 분열된다면 광주 어느 택시기사의 말처럼 범여권에 대한 단일화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정동영 후보이든 문국현 후보이든 단일화해 야권에 맞서지 않는다면 범여권 후보들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권 입장에선 해볼만한 싸움이 된다.

그런데도 이회창 전 한나당 총재가 사실상 출사표를 던진 것은 이명박 후보가 낙마할 것에 대비한 궁여지책인 듯하다. 대통령 후보 등록일 마감 이후 이명박 후보가 낙마한다면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될 것이다. 박근혜 전대표는 경선에서 졌기 때문에 어쨌든 후보등록을 할 수 없다.


보수권은 이런 와중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이회창 카드를 꺼낸 듯싶다. 이회창 카드는 ‘꽃놀이 패’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가 중도하차할 경우, 이회창으로 자연스럽게 단일화가 되고, 만약 이명박 후보가 완주할 경우라도 선거막판에 지지율이 높은 쪽으로 단일화를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이회창 진영이 이명박 후보를 한방에 날려버릴 ‘그 무엇’을 확보했다는 설과 대한민국 원조 보수세력이 이명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회창이 직접 나섰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도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당초 낙마의 가능성이 있는 이명박 후보를 경선에서 걸렀어야 했고, 그렇지 못해 일단 후보로 공식 선출했다면 낙마할 때 낙마하더라도 이명박 카드를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더욱이 이회창씨는 한나라당을 창당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경선과정에서 가만히 있다가 후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이제와서 출사표를 던지는 것은 심각한 자기부정이다. 이회창씨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자신이 창당했던 한나라당 당적을 정리하는 것일 게다.

이번에는 꼭 정권을 잡고야 말겠다는 이회창과 보수세력의 집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들의 생각에서 빠진 것이 있다. 바로 국민이다. 최근 이회창씨를 비롯한 보수세력의 행태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독선과 오만 그 자체다. 이토록 오만한 것은 국민의 목소리보다는 당파의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후기 조선을 망가트린 것이 노론이고, 노론의 영수가 우암 송시열이었다. 송시열은 국가의 이익보다 당파의 이익을 우선했다. 보수세력인 노론 일파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청조에 근대문물을 전해준 아담 샬과 두터운 친분을 쌓을 정도로 개혁적이었던 소현세자 독살의혹을 받고 있다. 소현세자가 집권에 성공해 개혁정책을 폈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노론의 득세로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했고, 결국 일본에 먹히고 말았다. 송시열과 노론이 역사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요즘 필명을 날리고 있는 역사학자 이덕일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라는 책을 통해 국익 또는 민생보다 당파의 이익을 앞세운 송시열과 노론일파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민생이 아닌 당파의 이익을 앞세운 측면에서 이회창을 대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보수와 조선시대의 노론이 닮았다. 조선시대에 민(民)은 의미가 없었다. 조선은 사(士)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 즉, ‘민의 나라’다. '이회창과 그들의 나라'는 역사의 심판 이전에 민의 심판을 먼저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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