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에 휘둘리는 남측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7.10.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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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태도에 정부·언론 해석 분분… "일정 연장" 해프닝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표정과 태도 하나하나에 남측의 정부와 언론이 휘둘리는 모양새다.

지난 2일 노무현 대통령 환영식에서의 '굳은 표정'이 온갖 억측을 낳았고, 이에 청와대가 긴급 진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그러나 3일 오전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보여 준 '밝은 표정' 한번으로 우려는 즉시 가라 앉았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방북 일정을 하루 연장할 것을 기습 제안하며 잠시나마 남측 정부의 일정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에 휘둘리는 남측


김정일 위원장에 휘둘리는 남측
2일 환영식에서 김 위원장이 보여 준 표정은 '건조함' 그 자체였다. 김 위원장은 차량에서 내린 노 대통령이 자신에게 걸어올 때까지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뒷짐을 진 채 자리를 지켰다.

악수도 "반갑습니다"는 짤막한 인사말과 함께 끝났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방북 당시 두 손을 맞잡고 열정적으로 악수했던 것과 비교된다. 이후 북한 육.해.공 의장대 사열과 양국 고위 관계자 소개 등 환영식 행사가 끝날 때까지 김 위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이를 놓고 남측 및 해외 언론은 우려섞인 관측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의 건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4살 아래라는 점을 고려한 것 같다"는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전략으로서의 '포커페이스'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김 위원장이 2000년 김 대통령과 차량에 등승한 것과 달리 이번에 따로 이동한 것을 놓고 "대접이 2000년 때보다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태도와 표정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자 청와대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김정섭 청와대 부대변인은 3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007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갖고 "최대한 예우한 것에는 (2000년 당시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며 "이번 북측의 영접 태도는 두번째 정상회담에 맞는 것으로, 배려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3일 오전 정상회담을 위해 노 대통령의 숙소를 찾아 온 김 위원장의 표정은 전날에 비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 내외에게 "잘 주무셨습니까"라며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어 노 대통령이 선물인 '12장생도'를 보여주자 김 위원장은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에 앞서 사진촬영을 할 때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가운데 자리를 양보하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회담장에서 환담을 나누는 중에도 김 위원장은 시종 밝은 표정을 보였다. 환영식 참석에 대해 노 대통령이 감사의 뜻을 표하자 김 위원장은 "제가 뭐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뻗치고 있을 필요가 없지요"라며 농담조로 화답하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건강악화설'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전날과 달리 이날 밝은 표정을 자주 보인 것 역시 전날 환영식에서 보인 '굳은 표정'을 근거로 남측 및 해외 언론이 '건강이상설'을 제기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편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일정 연장'을 깜짝 제안하면서 정부와 관련기관들을 바짝 긴장시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남북 정상회담 2차 회의 모두발언에서 노 대통령에게 평양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 5일 아침 서울로 돌아갈 것을 전격 제안했다.

그 직후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 이 소식을 전하며 "내부 회의를 거쳐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청와대 참모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김 위원장의 제안을 수용할 경우 대통령 뿐 아니라 권오규 경제부총리 등 고위급 수행원들에게 예정된 국내 일정도 크게 바뀔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2차 회의 말미에 "충분히 대화를 나눴으니 (연장) 안 해도 되겠다. 남측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본래대로 합시다"라며 상황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결국 노 대통령의 방북 일정은 예정돼 있던 2박3일로 유지됐고, 김 위원장의 '깜짝 제안'은 한낱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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