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남북 정상회담..파격과 파행 사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행정대학원장) 2007.10.0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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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파격만큼 내용과 내실 갖춰야 국제적 성과 인정

[MT시평]남북 정상회담..파격과 파행 사이


7년만에 개최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파격으로 시작되었다.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은 벤츠 방탄차량인 전용차로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에 이르러 하차한 후 도보로 `금단의 벽' 넘어 북쪽으로 건너갔다. 1차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항공편을 이용하였으나 노대통령은 육로로 평양까지 가되 군사분계선은 걸어서 넘어가는 이벤트를 연출하였다.

이 장면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송출되었으며 한반도 분단의 실체와 이를 극복하려는 한민족의 의지와 열망을 상징하기에 충분하였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파격은 평양에서의 환영 행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일행이 2시간 여 동안 개성과 평양간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사이 평양에서의 환영 영접행사장은 2번이나 번복되고 영접의 주체나 환영 방식도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당초 남북간 준비접촉을 통해 노 대통령의 환영 행사는 대동강변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광장에서 이루어지고 영접 주체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될 것으로 알려졌었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깜짝 영접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노 대통령의 역사적 군사분계선 통과 시점까지도 확인되지 않은 채 북행길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 입성 후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은 후 무개차를 타고 평양시내를 카퍼레이드하기도 하였다. 결국 12시 환영식장인 4.25 문화회관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공식 환영을 받으면서 2박 3일의 정상회담 일정에 돌입하였고, 급기야 북측의 방북일정 하루 연장요청에까지 이르렀다.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북한체제의 특성,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행태로 미루어 볼 때 통상적인 국제 관례에 따른 정상회담과는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남북간에 가로 놓인 모든 현안 의제들 역시 한반도 및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방식만으로는 풀어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여지고 있는 온갖 파격적인 진행에 대해 기대와 함께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분단국의 최고 통수권자가 굳이 특수 방탄 전용차에서 하차하여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걸어 정상회담 일정을 시작하는 것은 분명 파격인데, 그같은 파격이 아니고는 분단의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는 절박함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동시에 그러한 파격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될 것인지에 대한 답답함이 솟구치는 것도 형체도 없는 ‘분단의 벽’ 앞에 선 우리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경협, 그리고 통일과 관련된 현안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결과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함으로써 남북관계를 한 단계 높이는데 뜻을 같이할 것이다. 회담을 비롯하여 전체 방북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제들이 등장하거나 회담의 주제와 방식과 관련하여 숱한 파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 두 정상이 기억해야 할 것은 파격은 어디까지나 파격일 뿐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파격이 파격으로서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희소성과 발생 시점이 중요하다. 파격은 꼭 필요한 때 꼭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파행이나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다루는 한반도 평화정착이나 남북간 경협확대문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대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정착과 관련한 핵심 전제인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간 군사적 긴장 완화 문제 등은 남북간에만 풀어갈 수 없는 국제적 사안이다. 남북경협 확대문제도 초기 금강산관광사업 확대문제나 개성공단사업, 남북도로철도연결사업에서조차 남북간에만 합의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절감하고 있다.

따라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하고 합의하는 어떠한 중대 현안도 남북간에만 논의하고 합의하면 순조로운 이행이 보장될 수 있는 사안들이 아니다. 새로운 한반도 평화정착이나 본격적인 경협확대문제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를 감안하고 이들 국제사회로부터의 협력을 도출하는 방안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탈냉전과 함께 급속히 세계화되어가고 있다. 세계화는 이념이나 민족보다는 현안별 이해관계에 따른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 속에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세계화는 시장경제를 토대로 느슨하지만 구속력있는 규범과 제도를 갖추어가면서 추진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세계화속의 국제사회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수시로 드러나고 있는 파격들을 파행적 행태로 간주할 뿐 정상 행태로 용납하지 않는다. 관습과 관행이 유지되고 보편적 이성과 법에 따라 규범과 제도가 존중되는 국제사회는 파격의 일상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

전 세계의 이목이 현재 진행중인 남북정상회담을 날카롭게 주목하고 있다. 모든 일정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할 때에는 그 자체가 다시는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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