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박물관에서 나온 벤츠의 올드보이

슈투트가르트(독일)=김용관 기자 2007.09.2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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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 & Life]메르세데스-벤츠 57년형 300 SL 로드스터



반세기를 거슬러 메르세데스-벤츠의 '올드 보이'를 만났다.



50년이란 세월에도 불구하고 차는 공장에서 막 나왔을 때 그 모습 그대로다. 마주하고 있으니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차에 흠이라도 갈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시트에 몸을 맡겼다. 1950년대로의 시간 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승기]박물관에서 나온 벤츠의 올드보이


지난 14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클래식 센터. 그곳엔 300 SL 로드스터를 비롯해 190 SL 로드스터, 170 S 카브리올레, 220 SEb 카브리올레, 280 SL 로드스터 등 벤츠의 역사가 한 자리에 늘어서 있었다.

비행기로 고작 11시간을 날라왔지만 시간은 몇 곱을 건너 뛰어 1950년대로 거슬러온 것 같다.

이번 시승 대상은 벤츠가 50~60년대에 생산한 올드카.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은 이런 행운은 남다른 감흥을 불러온다.


특히 관심을 끄는 차는 '1957년형 300 SL 로드스터.' 1957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300 SL은 수년간 아우토반 최상의 포획자로 군림했다.

지금 봐도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디자인은 '세월을 뛰어넘는 명작'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오픈카, 땅에 착 달라붙은 차체, 차 전체를 두른 크롬 장식, 양옆 휀더에 마련된 상어 아가미 같은 공기 흡입구 등은 지금 봐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게다가 풍만한 엉덩이는 섹시함까지 드러낸다.

[시승기]박물관에서 나온 벤츠의 올드보이
이 같은 파격적인 요소들은 벤츠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SL 시리즈에서 상당 부분 반영되며 이어지고 있다. 널찍한 라디에이터 그릴 한 가운데 자리잡은 커다란 '삼각별' 역시 벤츠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만난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피터 파이퍼 박사는 "시간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디자인의 정체성(연속성)"을 명차의 조건 제1 순위로 꼽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만난 벤츠의 클래식카들은 명차의 조건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선홍색 가죽 시트에 몸을 집어넣고 자세를 잡았다. 시트 포지션이 낮아 눈앞에 세수대야만한 스티어링휠과 각종 계기판이 가득 찬다. 대시보드 바로 위에 올려놓은 룸미러를 보면서 50년의 세월을 실감한다.

요즘같이 편하진 않지만 당시로선 최첨단이었을게다. 비록 안전벨트도 없고 편의장비도 없지만 운전석에 앉아보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시승기]박물관에서 나온 벤츠의 올드보이
'우당탕 탕탕~~'. 대지의 사자가 포효하듯 거칠지만 우렁찬 배기음이 울려퍼졌다. 요즘 나오는 차의 정제된 엔진 사운드에 익숙해져 있다면 당혹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차안으로 들이치는 대기와 햇살이 따사롭다. 주변의 시선이 모두 차로 쏠린다. 심장이 울렁거릴 정도로 흥분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수동변속기를 1단으로 넣는다. 클러치 유격이 예상보다 깊어 순간 당황된다.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걱정부터 앞선다.

천천히 클러치를 떼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변속이 제대로 안됐는지 차가 울컥거린다.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모든 동작이 부드러워졌다.



변속기를 2단으로 옮기고 오른발에 힘을 가하자 우렁찬 엔진 사운드와 함께 차가 튀어나간다.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한듯 폭발력은 제원표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는 체감 속도는 여느 스포츠카 못지 않았다.

300 SL 로드스터는 직렬 6기통 3.0ℓ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맞물려 최고출력 215마력을 뿜어낸다. 제원표상 최고속도는 시속 250km. 이게 1957년도에 벌어진 일이니 기가 찰 뿐이다.

동행한 벤츠 관계자는 아무 말도, 어떠한 자랑도 하지 않았다. 그냥 벤츠의 오래된 차를 타보고 벤츠가 무엇인지 그대로를 느껴보라는 듯. 과거를 보면 현재를 알 수 있는 법.



2시간여의 시승이 끝났다. 마치 영화 속 한장면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1950년대를 다녀온 느낌이다.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에 차를 떠날 수 없었다.

은색 차체는 바랠 줄 모르고, 반짝이는 크롬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화려하기 그지없다. 슈투트가르트 근교를 둘러보는 이번 시승행로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주'였다.

[시승기]박물관에서 나온 벤츠의 올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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