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弗 '빅딜' 씨티·SC '골리앗' 제치다

홍콩=임대환 기자 2007.09.2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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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IB' 해외로 뛴다 (2) 홍콩에서 배운다<하>

진출 1년만에 우리·신한 본격 수익 창출
IB는 장치산업… 최소 2년 투자 우선돼야
한국제도에 발목잡혀 투자기회 놓치기도


지난 6월, 홍콩 2퀸스로드센트럴에 위치한 청콩센터 47층 홍콩우리투자은행. 초조하게 기다리던 현상순 대표는 "따냈습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홍콩우리투자은행이 중국 선전항공의 개발프로젝트 주간사로 선정되는 순간이었다.



선전항공은 '차이나 리스크'(이 회사가 망하면 중국이 망한다는 의미)로 불릴 만큼 우량회사. 더구나 호텔과 상업건물 등을 짓는 프로젝트의 펀딩규모는 2억달러로 적지 않았다. 이번 '딜'은 선전항공의 주거래은행인 씨티은행과의 한판 싸움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크레디트캐피탈 마케팅팀 직원 4명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현상순 대표는 중국계인 펠리트 파이씨를 팀장으로 영입했다. 최소한의 '관시'(關係)는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종입찰은 씨티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중국건설은행, 홍콩우리투자은행 '4자 경합'으로 좁혀졌다. 경쟁 은행들이 최소 수주 걸려 만든 제안서를 우리투자은행 직원들은 밤샘작업 끝에 2~3일 만에 끝내 선전항공에 제출했다. 직원들은 중국 선전으로, 홍콩의 선전항공 사무실로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했다. 그들과 마신 '바이주'(白酒)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수억弗 '빅딜' 씨티·SC '골리앗' 제치다


◇"홍콩으로 내닫다"=홍콩우리투자은행은 3년의 준비 끝에 지난해 10월1일 영업을 시작했다. 직원은 모두 40명으로, 홍콩에 진출한 한국계 IB 중 최대다. 현 대표는 "1년 정도 해보니 홍콩에 진출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예상보다 시장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처음 홍콩행을 제안했을 때 행내 반대가 있었지만 현 대표는 "그동안은 해외 진출 자체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이 잘못돼 실패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신한은행의 홍콩IB센터인 신한아주(亞洲)금융유한공사는 직원 30여명 규모로, 지난해 11월 영업에 들어갔다. 최근 본점에서 4명이 보강됐다. 신한아주금융은 2009년쯤 홍콩 현지의 중소형 IB를 인수·합병(M&A)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전문 IB인력이 300명으로 늘어난다. 특히 '탈 한국화'를 위해 내년부터 모든 문서를 영문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빠른 86년 홍콩에 진출한 산업은행 IB, 산은아주금융유한공사는 현지인력을 포함, 모두 30여명이 일하고 있다. 기업은행도 홍콩에 IB센터를 개설하기 위해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3명의 직원을 파견해 시장조사를 하고 내년부터 투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성과 보인다"=홍콩우리투자은행은 올해부터 수익이 나오고 있다. 상반기 9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냈고 연간으로는 목표치인 2500만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한다.

홍콩우리투자은행은 베이징올림픽 단지내 대규모 복합 레저관광 단지인 베이징 모건센터 건립 프로젝트를 스탠다드차타드와 경합 끝에 따냈다. 이 프로젝트는 5억달러 규모로 이미 공사가 95%가량 끝났다. 선전항공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수익이 늘어날 전망이다.



신한아주금융도 지난해 중국 산둥성의 설탕·곡물 제조기업 '시왕슈거홀딩스컴퍼니'에 대해 6000만달러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주선해 수수료로 4억원가량을 받았다. 현재 진행 중인 크고 작은 딜이 30~40건에 달해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수익창출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유광호 대표는 "2009년 1억달러의 순이익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방 지원 절실"=이들이 '땅 짚고 헤엄치듯' 손쉽게 영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 정비와 후방(백오피스)의 지원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IB사업은 고임금의 전문인력이 대거 투입되는 일종의 '장치산업'. 최소 2년 간은 인프라 구축을 위해 성과보다는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본점에서 '미래 성장동력은 IB'라는 확고한 인식 아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한 셈이다.



유광호 대표는 "IB사업 기준을 상업은행(커머셜뱅크)에 맞추고 있는데 이 부분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IB는 투자손실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 건이나 사업연도 전체를 기준으로 손익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상순 대표는 "홍콩의 금융기관은 은행업과 증권업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 제도상 불법이어서 양국 제도를 모두 따라야 하는 한국계 IB들은 상당한 투자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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