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있기까지 4번의 시련과 도전

홍콩=임대환 기자 2007.09.18 11:21
글자크기
세계적 금융시장으로 발전하기까지 홍콩에는 4가지 시련이 있었다.

첫째는 60년대 아시안달러마켓(Asian Dollar Market) 유치 실패다. 68년 미국의 은행들은 아시안달러마켓을 설립하기로 하고 후보지역으로 홍콩과 싱가포르를 올렸다. 이때 홍콩은 외화예금 이자에 대한 원천과세를 고집한 반면 싱가포르는 비과세 등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결국 아시안달러마켓은 싱가포르로 넘어갔다. 홍콩은 뒤늦게 국제금융센터 육성에 치명타를 입었다고 평가하고 82년 원천과세제도를 폐기했다.

둘째는 65년에 닥친 은행 위기였다. 은행에 대한 건전성 감독이 느슨한 데서 비롯된 위기로 홍콩 정부는 78년까지 신규 은행업 인가를 중단했다. 그 여파로 은행 수가 40개로 제한돼 국제 금융센터 입지를 조기에 다지지 못했다.



셋째는 72년 7월부터 83년 10월까지 기간에 일어난 통화신용 팽창이었다. 당시 당국의 통화정책 목표가 뚜렷하지 못한 결과였다. 72년 홍콩은 파운드화 본위제를 폐지하고 통화위원회제도로 전환했다.

그러나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발권 은행들은 외화가 아닌 홍콩달러화로 외환기금에 예치했고, 이 과정에서 통화신용이 급팽창했다. 이런 상황은 83년 10월 미국 달러화와 연계된 페그제가 도입될 때까지 계속됐다.



마지막은 83년부터 86년까지 금융위기로 65년 당시보다 규모와 파장이 컸다. 전문가들은 홍콩 정부에 통제수단이 없었다는 점에서 '신뢰의 위기'였다고 분석했다. 홍콩당국은 외환기금을 활용해 금융기관들을 구제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당국에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홍콩은 이런 도전을 맞아 시행착오 등을 거쳐 세계적 금융도시로 자리잡았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