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 파문' 靑검증시스템 문제있나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07.09.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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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전실장 거짓해명 차단 실패.."대통령 측근 눈치보기 아니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과 관련, 청와대 비서실의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 대변인 등 관련 비서진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민정수석의 경우 변양균 전 실장의 해명에만 의존해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책임이 있고 대변인의 경우 변 전 실장의 주장을 국민에게 전달함으로써 진실을 알리지 못했다는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도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진실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최종 판단을 하겠다고 말했는데 (청와대 참모 책임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변 전 실장의 거짓 해명을 사전에 스크린하지 못하는 등 민정수석실 시스템의 부실이 지적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지난 과정을 되짚어 보고 보완할 것이 있다면 보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인책론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고 검증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는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인책론과 검증 시스템 보강과 관련, 과연 무엇이 어떻게 문제였을까.

◆대통령 조카에겐 작동했던 검증시스템이 이번엔 왜?

우선 민정수석실과 관련, 일각에서는 변 전 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핵심 참모이기 때문에 검증 시스템을 엄격히 작동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예를 들어 사행성 오락게임인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 화제가 됐던 노 대통령의 조카인 노지원씨의 경우 지난 2003년 KT에서 우전시스템으로 옮길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엄격하게 개입했다.

이 때문에 노지원씨는 우전시스템 주식을 받고 대표이사로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주식은 전부 돌려주고 우전시스템에는 기술이사로 가야 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노지원씨를 불러 "사장은 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고 노지원씨는 이에 대해 "삼촌이 나에게 해준게 뭐냐. 내 실력으로 된 것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하다 눈물까지 흘렸다는 후문이다.



대통령 조카에게는 냉정하고 엄격하게 적용됐던 청와대 검증시스템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에게는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청와대는 '절대 아니다'란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 책임이 있다고 몰아 붙이면 사실 할 말이 없다. 또 책임이 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뒤 "그러나 정책실장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는데 조사할 수단이 뭐가 더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책실장이 거듭 강력 부인하는데 무슨 수단이 있나"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은 신정아씨와 관련, 변 전 실장 연루설이 계속 제기되자 변 전 실장을 몇 번씩이나 만나 거듭해서 이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추궁했다. 민정수석실 관계자 한 명은 변 전 실장을 4번이나 면담해 각종 의혹에 대해 질문했다고 한다.

변 전 실장은 그 때마다 "신정아씨는 전시실에서 만난 사이다.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니다. 한국에서 '신정아'란 이름을 모르면 문화인이 아니다"란 취지의 말만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변 전 실장의 고백 외에 다른 조사 수단은 전혀 없었던 것일까. 일단은 국정원과 경찰 등에서 수집하는 첩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원이나 경찰 등의 첩보도 근거를 갖춘 정보 수준이 돼야 청와대에 보고된다"며 "시중의 첩보를 일일이 다 보고 받다간 업무가 마비된다"고 말했다.



신정아씨와 관련해서는 변 전 실장 외에도 유력 대선후보와의 관계설 등 시중에 떠도는 얘기가 많았고 청와대도 이런 소문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근거가 없었고 조사할 방법도 없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수사권이 없다.

아주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간인을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신정아씨나 변 전 실장과 만났다는 장윤 스님을 직접 불러 조사할 수도 없었다.

◆"해외에 공문 보내 통화내역 조사까지 했건만..."



그렇다면 변 전 실장이 노 대통령의 과테말라 방문을 수행했을 때 장윤 스님과 통화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 통화내역을 조사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해 청와대는 "통화내역 조사는 물론 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과테말라 방문시 사용했던 휴대폰의 경우 과테말라에 직접 통화내역 조사를 의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변 전 실장 관련 의혹이 불거진 후 외교관을 통해 과테말라 등(당시 시애틀과 하와이를 경유했다)에 공문을 보내 통화내역을 조사했지만 시간이 꽤 걸렸고 조사 결과 변 전 실장과 장윤 스님의 통화내역은 없었다.



처음 변 전 실장 의혹을 제기했던 조선일보는 변 전 실장이 과테말라 방문시 장윤 스님과 직접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검찰이 신정아씨 PC에서 변 전 실장의 이메일을 대량 발견한 후 청와대가 변 전 실장을 불러 다시 사실관계를 따져 물은 결과 변 전 실장은 과테말라에서 친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장윤 스님과 접촉했다고 고백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보강할 것은 보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강할지 방안이 없는 상태다.

'왜 더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았느냐'고 따진다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수사권을 주고 권한을 강화해줘야 한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즉, '특권'을 없앤다는 참여정부의 핵심가치와 어긋나게 민정수석실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변양균 전 실장은 뒤에 숨고 靑이 나서 해명한 것은 문제

다만 신정아씨 연루설이 불거졌을 때 변 전 실장을 직접 기자들 앞에 세워 해명하도록 하지 않고 대변인을 통해 해명하도록 허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변 전 실장은 지난달 24일 첫 의혹 보도가 나온 이후 대변인을 통해 전면 부인 입장을 밝혔다. 또 이튿날인 25일 노 대통령이 참석한 내부 회의에서 일부 참모들로부터 "직접 언론에 나서 해명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지만 "내가 직접 나서면 괜히 일이 커진다"는 취지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변 전 실장은 계속 기자들 앞에 직접 나서기를 거부했고 그 때마다 대변인은 변 전 실장의 의혹 부인 입장만 기자들에게 '앵무새'처럼 반복 전달해야 했다.

만약 의혹의 당사자인 변 전 실장이 직접 나서서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면 이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현재 '파문'은 변 전 실장 개인에게 집중됐을 것이고 청와대의 타격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변 전 실장 자신은 뒤에 숨어 있고 청와대가 나서서 변 전 실장의 거짓 해명을 그대로 전달해 결과적으로 변 전 실장을 비호한 셈이니 청와대로선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난감하고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문제가 있다면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변 전 실장에게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면 직접 나서서 해명하라"고 강하게 독촉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변 전 실장이 노 대통령의 강한 신임을 얻고 있는 핵심 참모이기 때문이었다면, '강한 권력에 쓴소리하지 못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허약함이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도 아니라면 청와대 내의 과도한 '제 식구 감싸기' 혹은 '제 식구의' 도덕성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문제였을 뿐이다. 이도 아니라면 언론에 대한 '적개심'이 너무 강했던 탓에 언론의 의혹 제기는 무조건 부인하고 보자는 심리가 깔려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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