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국부펀드, '자본시장 폭군' 되나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07.09.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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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특성상 공격적 투자에는 한계-WSJ

중국이 세계 최고의 외환 보유액을 바탕으로 곧 세계 자본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할 것이란 소식에 시장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중국의 현재 외환 보유액은 1조400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2월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외환보유국이 되더니 같은 해 10월 사상 처음으로 외환보유액 1조달러까지 돌파했다.

1조달러 돌파 때 중국 정부는 남아도는 외화를 세계 자본시장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초기 자본 2000억달러를 투입, 국가외환투자공사(가칭)를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이후 후속작업을 계속해왔다. 그 결과 이르면 이달 늦어도 올해 안 국영투자사가 공식 출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외환투자공사는 세계 최대의 국부(國富)펀드(Sovereign Wealth Funds)가 될 전망이다.



아직 실체조차 없지만 국가외환투자공사의 행보를 두고 세계 자본시장은 벌써부터 시끄럽다.

출범에 앞서 국가외환투자공사는 지난 5월 30억달러를 투입, 미 사모펀드 블랙스톤그룹의 지분 10%를 매입했다. 깜짝 놀랄만한 선택이었다.

이후 미국 월마트에서 영국 천연가스 콘체른까지 중국 인수 소문을 탔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긴장했다. 미국, 독일 정부 등은 중국이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 업체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국제 자본시장의 폭군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중국 체제의 특성이 공격적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간의 기억에 비춰볼 때 중국의 블랙스톤 지분 매입은 이례적인 일로 분류된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수년간 꾸준히 증가했지만 그간 중국은 공격적인 투자보다 안정 지향적인 선택을 해왔다.



국가외환투자공사 설립에 밀접한 관계자들은 블랙스톤 지분 인수와 유사한 투자 행태가 거듭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선 이들은 국가외환투자공사가 직접 투자 대신 전문 펀드 매니저를 통한 간접 투자를 선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설립 초기 이 같은 경향이 보다 뚜렷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 고위 경제 관료이자 국가외환투자공사 설립 준비그룹의 일원인 제시 왕은 "(투자사의) 목적은 단순한 투자 이익 환수에 있다"며 "(투자사는) 수동적 투자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펀드매니저를 통한 간접 투자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다. 막대한 보수를 주고 저명 외부 펀드매니저를 영입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중국 국영은행 최고위 관리들의 연봉은 20만달러 수준. 국제 평균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중국 내에선 이들의 보수를 두고 말이 많다.



일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들이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받는다며 이들을 빗대 중국 관료주의 사회 전체를 비난하기도 한다.

이 같은 민감성은 외부 펀드매니저들이 신속하게 투자계획 전반을 장악,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외국 정부의 불편한 시선도 문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이달 안에 국부펀드에 관한 논의를 가질 예정이다. 이 논의에서 중국 국부펀드가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 뻔하다. 또 미국 의회에서도 중국 정부의 투자 계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이들은 중국이 국제 자본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그간 중국이 보여준 급성장세를 볼 때 이들이 견제와 감시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국가외환투자공사의 투자 전략은 여타국 정부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정해질 수밖에 없다.



투자사 내부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아직 기본적인 사항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일례로 명칭 문제. 투자사는 당초 국가외환투자공사(State Investment Co.)로 명명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중국투자공사(China Investment Co.)가 정식 명칭이 될 것이란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초기 투자 자금의 규모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외환투자공사에 투입될 2000억달러 중 670억달러는 회사 설립과 동시에 중앙후이진투자공사 인수에 쓰인다. 후이진투자공사는 공상은행 등 대출기관 내 국영자금의 대부분을 운용하고 있다.

또 나머지 자금 중 상당 부분이 국영은행 자본 재편에 투입된다. 이 자금만도 수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외환투자공사가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테마섹홀딩을 모델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외환투자공사는 이보다 하바드나 예일같은 미국 대학들의 재단 운용 방식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국가외환투자공사의 지분 인수 이후 블랙스톤의 주가는 약 30% 하락했다. 자신들의 존재를 처음 알린 곳에서 실패를 체감하고 있는 중국 국부펀드가 어떤 다음 행보를 택할지 전세계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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