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브리핑 '벽치기' 취재 해프닝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7.08.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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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아프간 석방자 명단 기자들 밖에서 귀동냥

‘추가석방 온브리핑 대기요. 구체시간 추후통보 예정’

29일 저녁 7시 6분, 외교통상부 공보실에서 출입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아프간 피랍사태와 관련, 조만간 2차 석방 브리핑을 할 테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는 메시지였다.

1차 석방 소식을 전하고 중앙청사 근처에서 국밥을 먹다 부리나케 외교부 기자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통합브리핑실에는 돈 주고도 못 볼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브리핑을 듣긴 들어야겠고, 그렇다고 통합브리핑실로 들어갈 수는 없고…’. 결국 기자들은 브리핑실 문 앞에서 귀동냥으로 2차 석방자 명단을 받아 적었다. 속칭 ‘벽치기’를 단행한 것. 그 시각 외교부 대변인은 소수 외신 기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허공에 대고 석방자 명단을 읊고 있었다.

이렇듯 웃지 못 할 진풍경이 펼쳐진 것은 취재선진화 방안을 강행하는 정부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기자들간의 대립 때문이다.



외교부 기자실은 송민순 장관이 6주째 정례브리핑을 건너뛰는 등 정부-기자 대립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이다. 기자들은 취재접근권이 보장되기 전까지는 정부가 바늘허리에 실 매듯 후다닥 지은 통합브리핑실로 옮길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도 기자들이 버티자 외교부는 결국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아프간 피랍자 석방 브리핑을 통합브리핑실에서 하겠다는 강수를 택했다.

이에 기자들은 다시 대책회의를 열고 “이처럼 기습적으로 발표를 강행한 것은 정부의 언론취재 거부로 간주할 수밖에 없고 유사한 일이 재발하면 강력 대응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외교부에 전달했다.


정부와 기자들간 대립이 악화일로를 걸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이 모든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일부 취재처에는 카르텔 관행이 남아 있고 기자사회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안일이건, 직장일이건 모든 일에는 때와 절차가 있다. 하물며 정부가 하는 일이야 두 말해 무엇할까.



참여정부는 집권 초부터 토론만 있고 결과는 없다는 ‘토론공화국’ 비판을 받아 왔고, 그 때마다 토론의 효용성을 강하게 옹호해 왔다. 그러나 이번 취재선진화 방안에 대해서는 마치 귀신에라도 쫓기듯 절차와 토론을 무시하고 100m 달리기 경주를 벌이고 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흘러 기자실이 원상복구되면 그 간의 막대한 비용 손실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카르텔을 깨려면 완전경쟁 시장을 만들면 된다고 경제학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참여정부가 정말 기자들의 카르텔을 문제 삼으려면 공무원들과의 접촉을 금지시킬 게 아니라 공정 취재경쟁 시스템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는지 살펴보는 게 우선일 것이다.



또 기자들의 카르텔을 방조하거나 오히려 적극 일조하는 공무원들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 순서에 더 맞아 보인다. 기자들은 여전히 일부 언론에만 취재 소스를 제공하고 인사기사 청탁을 하는 공무원들을 수없이 목도하고 있다.

정부가 온 국민이 궁금해 하는 사안으로 기자들의 반응을 테스트하는 소재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지금이라도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진정한 ‘취재 선진화’ 방안에 접근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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