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무원 선진화 방안은 없나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7.08.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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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쯤, 그러니까 22일에 외교통상부 기자실 문을 처음 두드렸다. 이전까지 과천정부청사를 출입하다 세종로 중앙청사라는 새로운 취재처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외통부 기자실에 대한 첫인상은 그야말로 어수선함 그 자체였다. 장기전에 돌입한 아프간 피랍 사태로 눈이 퀭한 기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와중에 기자실 통폐합 문제까지 겹쳐 대책회의를 열고 있었다.



출입기자로 등록도 돼 있지 않고 출입증도 없어 회의를 뒤로 한 채 우선 등록절차부터 밟았다. 그런데 뜻밖의 말부터 들려왔다. 등록 업무가 국정홍보처로 이관됐기 때문에 서류를 받을 수 없다는 것.

이야기 끝에 기자실 이전 문제가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니 되든 안되든 일단 서류는 접수하고 보자는 쪽으로 합의를 봤다. 등록이 안됐다고 기사를 안쓸 수는 없으므로 우선 보도자료 e-메일 서비스는 받기로 했다.



문제는 교육부 쪽에서 터졌다. 출입기자 신규등록 업무가 전면 중지됐고, e-메일도 보내줄 수 없으며, 불만이 있으면 국정홍보처에 가서 따지라고 했다.

국정홍보처에서는 더 가관이었다. 개별 부처에서는 출입기자 등록업무를 할 수 없는데 누가 등록업무를 받아줬냐며 담당직원을 색출할 기세였다. 서류를 받아준 외교부 직원에게 괜히 미안한 신세가 됐다.

그럼 국정홍보처에서 등록해 달라고 했더니 시스템이 완비되려면 최소 2주는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2주 동안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공중에 붕 뜬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따로 없었다.


공무원에 대한 실망은 취재과정에서도 느껴졌다. 아프간 피랍자 석방이 이뤄지면 협상단의 활약이나 뒷이야기가 세인들의 관심을 끌 것이므로 협상단 명단을 좀 알려달라고 공보처 직원에게 부탁했다. 모든 취재는 공보실을 거치라고 하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아니나 다를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협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외교부 제1차관이 대표로 있다는 것만 밝힐 수 있단다. 그것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듣기까지 한 나절이 걸렸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빴나’, ‘처음 출입한다고 무시하는 건가’...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은행에 들어가면 번호표부터 찾는다. 예전에는 창구마다 줄을 섰지만 먼저 온 사람이 늦게 볼 일을 마치는 일이 허다해지면서 생긴 일종의 혁신 방안이다.

국정홍보처는 반드시 공보실을 거쳐 취재를 하라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자들이 공보실 직원에 놀아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적으로 친하거나 영향력이 큰 언론사의 업무를 먼저 처리한다든가, 해당 부서에 알아보지도 않고 알아본 것처럼 기자들에게 내용을 전달할 수도 있다.



국정홍보처는 과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번호표 기계 같은 대책을 마련할 수 있고, 또 마련하고 있는가.

나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도 혹시 구악(舊惡)은 아닐까….’ 기자라는 알량한 힘을 믿고 취재원을 핍박하고 구박하며 윽박지르지는 않았던가. 취재원에게 밥 얻어먹기를 당연시하지는 않았던가. 묻고 경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친한 취재원으로부터 ‘상종하지 못할 놈이 기자’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기에 더더욱 그렇다.

국정홍보처는 취재시스템이 후진적이어서 취재 선진화 방안을 만들었단다. 그런데 왜 국정홍보처는 청와대 눈치를 살피고, 개별 부처들은 왜 또 국정홍보처 눈치를 살피는지 모르겠다. 정책에 확신이 있다면 눈치 볼 이유가 없다.



혁신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제도를 손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부터 움직여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진정성’밖에 없다.

공무원 혁신을 외쳐온 노 대통령이 ‘동아리 하나 더 가입하는 게 혁신이냐’는 공무원들의 비아냥도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은 줄곧 공무원들을 내편이라며 끌어안아 왔지만 공무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기자실 통폐합 공방의 와중에 때를 잘못 맞춰 출입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국민 서비스라는 행정의 기본도 안돼 있다는 생각도 지우기 힘들다.



지난 27일, 6일만에 외교부로부터 등록을 해 줄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공무원 선진화 방안은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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