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책임론에 입열다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7.08.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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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신용거품 주범…예기치 못한 '금리정책' 부작용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책임론의 한 가운데 서있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이 과거 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미국 최근 정·재계 일각에서는 "그린스펀 의장 재임 시절 저금리 정책으로 현재 금융시장 위기가 잉태됐다"며 그린스펀을 희생양으로 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 그린스펀, 책임론에 입열다

이런 가운데 그린스펀 의장이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저금리 정책을 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적극 밝혔다.



그린스펀은 "최근 겪고 있는 어려움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저금리는)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금융시스템이 진화함으로써 레버리지가 높은 은행의 위험을 투자자들에게 골고루 배분, 이전보다 경제와 은행의 안정성이 커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린스펀은 "미국 이외 경제성장세는 매우 강하며, 미국 역시 실업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최근 금융시장은 대부분의 신용 충격을 흡수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은행은 위험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면서 "최근 금융시장의 결과도 정책에 포함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저금리에 따른 지나친 대출이 신용시장 거품으로 이어졌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저금리는 경제와 기업실적을 빠른 속도로 회복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그린스펀 재임 당시에는 그의 정책에 대해 대부분 찬사를 보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언급과는 달리 신용시장 문제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오히려 중간단계 신용도를 가진 알트에이 모기지 업체가 파산했으며, 우량등급 모기지 대출 금리도 급등하면서 전반적인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 저금리가 신용거품 형성 주범



그린스펀이 이처럼 책임론에 대해 입을 연 것은 신용거품을 쌓게 만든 것은 바로 그가 재임하던 시절 펼쳤던 저금리 정책 때문이라는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2000~2001년 기술주 버블이 터지고 곧이어 9.11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심각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기술주 폭락으로 주가가 40% 가까이 빠지고 경기침체 위험도 높아진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책적 대응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는 2003년 중반까지 지속됐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마저 1% 대로 주저앉으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왔다. 결국 FRB는 기준금리를 1%까지 낮췄다. 이후 1% 저금리는 1년간 지속됐다.

그린스펀 의장은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부정적인 여파는 상당하다"며 디플레이션으로 고전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경제가 개선되면서 저금리는 신용거품을 낳았고, 이는 최근 서브프라임 위기로까지 이어지면서 신용 경색 상황을 유발했다. 아직까지 경제는 견조하지만, 상황이 추가로 악화될 경우 경제에 좋을 것이 없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최근 서브프라임 위기로 유발된 신용시장 경색은 FRB가 저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한데 따른 '인과응보'라고 지적했다.

금리가 내려가면서 개인 모기지 대출은 활성화됐고, 이는 주택시장 호황으로 연결됐다. 저금리로 인해 넘치는 유동성은 차입매수(LBO) 붐으로 이어졌다. 사모펀드들이 이용할 자금은 풍부한데 반해 증시는 적정 가치를 밑도는 수준이어서, M&A 수요는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연금펀드와 기금펀드들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앞다퉈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들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했다. 그리고 위험성이 큰 금융상품 투자 비중도 덩달아 커졌다. 한마디로 경제 전반으로 신용 거품이 퍼진 상황이었다.



◇ 금융정책 예기치 않은 부작용 가져올 수도

하지만 최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FRB가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해 저금리 수준을 너무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 FRB를 책임졌던 그린스펀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그린스펀도 당시 저금리가 불길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린스펀은 금리 인하 정책을 펼치면서도 측근들에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용시장의 작동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밝혔다.



WSJ는 이러한 신용경색 역시 멀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금융정책(금리정책)의 효과의 이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비효과'처럼 섣부른 금융정책이 향후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효과를 알면서도 단기 부양책을 쓸 수 밖에 없는 당국자들의 하소연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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