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해외유학은 못시킬망정...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동산부장 2007.07.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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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남쪽의 귤이 북쪽에선 탱자가 된다는 의미다. 같은 씨앗이라도 토양이나 기후 등 주어진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야구단은 선수를 뽑을 때 비슷한 기량이거나, 큰 차이가 아니라면 우승해본 경험이 많거나 이긴 경험이 많은 선수를 선발한다고 한다.



지는 환경과 분위기에 익숙해 있는 선수보다 이기는 환경, 분위기에 익숙해 있는 선수가 이기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전 건설교통부 산하 국토연구원이 공공기관 지방이전 관련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에서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선진국에서 온 교수들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으로 인구 분산 등 국토균형발전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더불어 교통 주택 교육 등의 문제를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세미나는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공공기관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가 마련한 자리다. 그런 만큼 우리에 앞서 인위적으로 공공기관을 이전한 경험이 있는 선진국들의 성공사례를 알리고 우리도 그러한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졌다. 영국 등 선진국과 다른 우리만의 '토양'과 '기후'가 빠진 것이다. 바로 교육문제다. 혁신도시이건 기업도시이건 자녀교육 문제가 빠진 상황에서는 수도권 인구분산이나 지역균형발전은 장담하기 어렵다.

학원가가 발달해 있는 지역이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집값이 훨씬 비싸고, 앞 뒤 동 아파트가 특목고나 명문대 입학률이 높은 중·고등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집값과 전세값이 천지차이를 보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같은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곳이 목동이다. 특목고 입학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임에도 요즘 집값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중학교 학급수가 턱없이 부족해 목동에 집을 마련하거나 전세로 들어가도 특목고 입학률이 높은 중학교 배정이 보장돼 있지 않아서다. 자녀입학 문제를 둘러싼 미묘한 사안에 집값 전셋값이 춤을 추고, 입주 선호도가 치솟다 고꾸라지는 일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얼마전 건설업체 임원에게 의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지방에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한 판촉전략 일환으로 혁신도시 이전 대상 공공기관 직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가족과 함께 이사할 생각이 없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기러기 아빠가 되겠다는 이유는 자녀교육 문제였다.

남들처럼 해외 조기유학은 시키지 못할 망정 자녀들을 혁신도시로 데려갔다가 대학문턱도 구경시키지 못할 일을 왜 하냐는 것이다.

맛있는 귤을 만들겠다는 혁신도시 기업도시 계획이 탱자로 전락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선진국의 성공사례로 우리도 그렇게 될 것 처럼 보랏빛으로 포장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혁신도시로 옮겨가야 하는 직원들의 고민을 귀담아 듣는 게 급선무다. 이들이 바라는 토양과 기후를 먼저 만들겠다는 의지와 방침이 있어야 혁신도시 프로젝트도 반대론자들과의 논쟁에서 이기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고민은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과 대학교 총장들이 내신제도를 놓고 벌인 논란과도 맥이 닿아있어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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