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담합, 자원의 낭비"

머니투데이 김준형 온라인총괄부장 2007.01.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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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기자의 담합, 자원의 낭비"


"가장 큰 공공의 적은 '담합(談合)'이다"
담합(부당공동행위)근절을 존립 근거로 삼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주로 하는 말이다.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볼때 틀린 표현이 아니다.

기원전 3000년 이집트의 양털상인들이 몰래 짜고 양털 가격을 터무니 없이 올려 물의를 일으켰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담합의 폐해는 인류 경제 생활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이 굴러간다고(다시 말해 '적정이윤'이 자리잡는다고)설파한 애덤 스미스의 이론도 담합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스미스는 담합행위에 대해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일단 모였다 하면 항상 소비자들을 우롱할 술수나 가격상승 결의 따위로 대화를 끝맺는다"고 개탄했다.

담합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시장경제에 암적인 존재이다. 담합이 이뤄지면 복수가 아닌 단수의 생산 판매자가 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독점'현상이 나타난다.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기업이 살아남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아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도 이뤄지지 않아 결국은 세금이 낭비된다. 담합 주역들에게는 말 그대로 'Sweet Deal'이지만 국민들에게는 호주머니에서 소리없이 엄청난 돈을 훔쳐가는 큰 도둑질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담합을 저지른 사업자에게 연 매출액의 10%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과징금으로 물릴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 법원은 담합행위가 인정된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반도체 간부들에게 벌금형이 아닌 실형이라는 무거운 벌을 내린 바 있다. 담합이 단순한 경제범죄가 아니라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국기문란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숨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담합 혐의를 걸고, 조사하도록 공개 지시까지 한 것도 아마 언론의 담합이 '국기 문란'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을법 하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혹은 그에게 언론관을 심어준 보좌진들에게) 앞에서 예를 든 스미스의 말은 "기자들은 모였다 하면 항상 독자들을 우롱할 술수로 대화를 끝맺는다"고 읽히지 않았을까.


실제로 취재현장에 담합의 유혹이 없을리는 없다.
현장의 기자들에게 '당꼬'라는 일본식 표현은 귀에 친숙한 단어이다. 대통령의 의심처럼 몇몇이서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고스톱 치면서 '대표선수가' 쓴 기사를 각 회사 팩스로 돌렸던 전설속의 시절이 있었다.

현장 기자들의 담합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자료 양이 너무 많아 도저히 한 언론사 기자로는 검토해서 기사쓸 시간이 안될때, 나눠서 취재한뒤에 기사를 함께 쓰는 '분업형 담합'.
'액물'로 찍힌 특정 언론사 기자만 낙종시키고 나머지 기자들이 기사를 일제히 내보내는 '왕따성 담합'.
특정 대상을 작심하고 한꺼번에 조지는 '조폭형 담합'.
아예 기사가 되는데도 귀찮거나 봐주기 위해 기사를 쓰지 않는 '배임형 담합'도 있다.

하지만 우스개 소리로나 이런 분류를 해볼수 있을 정도로 언론 환경은 바뀌었다. 리얼타임 속보가 쏟아지고, 성격이 판이한 매체가 각을 세우고, 언론사-기자간 경쟁이 치열하다. 정부부처의 경우는 참여정부 이후 '오붓한' 기자실 대신 삭막한 닭장형식의 브리핑룸이 자리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기자식 표현을 쓰자면)'미풍양속'은 찾기가 힘들다.

설사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는 최전선 전투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이상한 변칙 무기가 나오기도 하고, 적군 소총수들끼리 총을 내려놓고 잠시 쉬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이런 에피소드와 상관없이 갈린다.

스스로를 국가를 경영하는 주체로 생각하는 일부 정치언론의 '거대 담합'에 의해 소비자들이 질높은 언론 제품을 소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는 공감한다. 언론의 아젠다 설정 위력앞에 번번히 본질이 잘못 전달되는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
기자들이 소속사의 논점과 이해를 철저히 대변하는 샐러리맨화되고 있다는것도 부끄럽지만 현실이다.

하지만 '국기 문란'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보다 커다란 담합은 기자실에서 일어나는게 아니다. 밀가루회사의 담합이 할인마트 판매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게 아닌것과 같다.

대통령이 문제로 삼은 보건복지부 건은 홍보실장이나 공보실장이 궁시렁댈만한 이야기이지 국가가 나서서 '조사'할 사안이 못된다.

따지고 보면 참여정부가 꼬이기 시작한건 '언론'이라는 영역 자체를 백안시하고, 모든 언론과 기자를 적이자 잠재적 사기꾼으로 설정한데서 시작됐다.
제대로 써야 할 실탄으로 정밀사격을 하지 못하고 반발계수 높은 고무탄만 철통같은 옹벽에 대고 쏴 댔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는 최고의 인적 자원(일꾼)이다. 사안의 본질과 경중을 가리지 않고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하는 것은 담합 못지 않게 자원의 활용을 왜곡하는 일이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홍수에 동참하는 것도 담합 가담행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다른 사업자와 은밀히 만난적이 없고, 기자실에서 다른 기자들과 죽치고 앉아 얼굴을 마주대고 있지도 않으며, 필자가 사업자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업자와의 실질적인 경쟁을 제한한 적도 없으니 공정거래법상 무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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