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할 일이 너무 많다

김영권 정보과학부장 겸 특집기획부장 2006.09.2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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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한 일을 덜어내야 행복을 도모할 수 있다

FM라디오를 틀고 소파에 누워 책을 편다. 그러면 음악을 듣고 독서도 하면서 쉴 수 있다. 이른바 '1타3피'다. 여기에 차 한잔을 더하면 '1타4피'다.

[웰빙에세이]할 일이 너무 많다


휴일이면 내가 좋아하는 '행사'중 하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1타3피'가 아니다. 음악은 그냥 흘러가고, 책은 한두장 넘기다 보면 졸리기 시작한다.



그러니 비몽사몽 한두시간 빈둥거리다 끝난다. 결국 나는 이 행사의 목적을 `책읽기'에서 `퍼지기'로 바꿨다. 좋게 말하면 폼나게 퍼지기다. 어쨋든 느긋해서 좋다.
 
문제는 이같이 섞어서 하는 게 만성이 됐다는 것이다. 거실에는 항상 TV가 웅성댄다. 식구들은 TV를 보는 둥 마는 둥, 얘기를 하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어수선한 시간을 때운다. 급하게 아침을 때울 때도 눈은 신문에, 귀는 라디오에 쏠려 있다.

운전할 때는 더 많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다. CD 음악을 고르고, 전화를 하고, 옆사람과 잡담을 한다. 때로는 때늦은 식사도 해치운다. 헬스장에서도 운동만 하는게 아니다. 누구는 뛰면서 TV를 보고, 누구는 걸으면서 잡지를 읽는다.



요즘 컴퓨터는 두뇌가 2개인 '듀얼코어', 더 나아가 '멀티코어'라는데 사실 우리의 대뇌야 말로 `멀티코어' 수준으로 가동된다. 세상 일이 바쁘다 보니 한번에 한가지씩 해서는 부족하다. 한번에 두가지 이상, 쉬지 않고 스케줄을 소화하는 게 바로 능력있는 사람이고, VIP라는 증거다.

그 VIP가 되려고 저마다 수첩에 깨알같이 일정을 채운다. 서로 약속시간을 맞추려면 수첩을 꺼내 꼼꼼하게 빈틈을 대조해야 한다. 줄줄이 이어진 점심과 저녁 약속에 숨이 가쁘다. 여기에 조찬까지 끼워 넣으면 호젓한 식사는 한끼도 없는 것이다.

하루에 점심과 저녁을 두세번씩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끼리는 봄에 여름 약속을, 여름에 가을 약속을 잡아야 한다. 할 일이 많으니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이 일 할 때 저 일을 생각하고, 급하면 이일저일을 섞어서 하니 뒤죽박죽이기 십상이다.


일 없는 실업자들은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눈총을 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랴. 요즘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아 불행한 사람과 할 일이 너무 없어 불행한 사람, 이렇게 두종류만 있는 것을….

명함이 쌓이지만 솔직히 이름과 얼굴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마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인사만 나눴지 마음을 나누지 않았으니 남는 것은 명함 뿐이다. 이런 곤란을 넘어서기 위해 강한 첫인상을 남기는 사교술이 필요하다. 그 사교술을 익히느라 바쁜 일정에 마음이 더 바빠진다.

그러나 다른 방법도 있다. 일정을 비우는 것이다.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될 것은 듣지 않는다. 한번에 한가지만 정성스럽게 한다. 이런 기준에 따라 가고 싶지 않는 자리는 가지 않는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자리는 안가는 쪽으로 정리한다.

그러면 내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과 꼭 만나야 할 사람만 남는다. 그뿐인가. 여백이 생기니 이젠 누구를 만날까, 무슨 일을 벌일까 궁리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나 스승을 만나는 것처럼 마음의 에너지를 나누고 증폭시키는 만남을 경험한다.

지금 우리가 진짜로 챙겨야 할 스케줄은 이런 게 아닌가. 나의 삶을 가득 채운 번잡한 일들을 덜어내야 행복한 일을 도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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