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은 끄떡없고 깃털만 책임지는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2006.04.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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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사회 구성원 각자가 모두 반성하고 책임지는 자세 필요

반성하고 책임지는 언행은 용감하고 아름답다. 새로운 길을 여는 문(門)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맞아 2000년 3월 로마교황 바오로 2세는 지난 세월 인류에게 저질렀던 카톨릭의 잘못 몇 가지를 공개적으로 참회하고 반성했다.

종교재판이라는 미명하에 개신교를 박해했다는 점, 십자군전쟁으로 무고한 아시아인을 학살했다는 것과 나치독재때 침묵하고 유태인학살을 방관했다는 것 등이었다.
종교의 속성상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수백년이 걸린 모양이다. 아무튼 신선했다. 그야말로 밀레니엄적 선물이자 메시지였다.



모든 인간이나 사회조직은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그 대응이 문제다. 타율적으로는 형벌을 받거나 자발적으로는 책임지는 경우가 있다. 어쨌든 책임지고 반성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아놀드 토인비도 로마의 멸망같이 서구의 몰락을 예고했었다. 모두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자체의 붕괴가 원인이다. 도덕적 해이, 반성의 기피가 주범이라는 것이다. 만약 미국도 사라진다면 그 이유는 NMD(National Missile Defense) 체계가 아니라 역시 성적문란이나 인종차별, 마약과 같은 내부 요인일 것이다.
 
지도급 인사들에게는 엄하게, 백성들에게는 관용으로
 
‘세가 새턴’등 TV게임기 제품으로 유명한 세가 엔터프라이즈의 오카와 이사오(大川功)회장이 오래전 “회사재건을 위해 850억엔(약9000억원)을 무상 증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전에도 500억엔을 회사에 제공했다. 모두 총 1350억엔(약1조4800억원)이란 거액의 사재를 내놓은 ‘책임 있는 양심경영’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정경유착으로 문제가 있다는 일본이지만 오카와회장 같은 인물이 있어서 고개가 끄떡여진다. 자발적으로 책임지는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정·관계지도자들이나 기업인들의 자살도 일본인 나름으로 책임지는 모습들이다. 그들의 할복은 경외롭기까지 하다.
 
중국도 전 총리 주룽지가 일관되게 개혁하는 과정에서 부패공직자들을 과감히 처형하고 또 일정액 이상 부도를 낸 기업가를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보호할 가치 없는 인권보다 책임과 형벌의 엄정함이 앞서는 사례들이다.

한비자같은 법가(法家)의 주장대로 지도급인사들이게는 엄하게, 백성들에게는 관용으로 다스리는 대륙의 지혜 같다. 한국은 어떤가. 아시다시피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존귀한(?) 책임자들은 대낮에 안개 걷히듯 순식간에 홀연히 사라진다. 어쩌다가 피래미나 깃털만 희생타가 될 뿐이다.
 
몸통은 끄떡없고 깃털만 책임지는 시늉 짖는 무책임사회
 
감옥에 들어가면서 수천억원의 뇌물과 집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던 전직 대통령들이 과연 말대로 실천했는지 궁금하다. 또 정부는 그것을 챙기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자식 관리 못해 스스로 자식을 감옥에까지 보내고 자신은 한 푼도 뇌물을 받지 않았다고 호언해대는 전직 대통령도 국민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이다.
 
IMF를 몰고 온 국가경영자들이 책임 없다고 주장하는 모습도 가관이지만 그나마 모두 사라져버렸다. 상당수 철밥통 관료들도 국민 앞에 봉사하고 책임지기보다 오랜 세월 군림해온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전문경영과는 관계없이 일부 공기업 사장의 자리는 낙하산 인사로 무책임하게 얼룩져 왔다. 국민의 피와 땀인 공적자금을 수십 조원씩 집어먹은 금융권의 책임자들은 어디 있는가.
 
왕자의 난 등으로 한국 경제를 위태롭게 했던 재벌오너 2세들은 어디 있는가. 쩍하면 외국에 나가 배회하면서 정권과 흥정하는 재벌 배짱의 근거는 무엇일까. 전문경영자들도 고객과 주주와 사회에 대한 책임경영보다는 오너 앞에 충성경영이 앞서는 게 오랜 기업의 역사다. 오너는 그나마 아예 무책임의 대명사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까지 모든 집단이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고 기회를 잃고 어려움만 더해 가는 한국경제가 걱정이다. 모두가 천민화 되었다. 각자 반성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귀중하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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