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께 올림픽 메달 선물할게요" 여자탁구 끈끈한 사제지간, 파리에서 '케미'가 더 기대된다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스타뉴스 부산=양정웅 기자 2024.02.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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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탁구대표팀 오광헌 감독(오른쪽 3번째)이 2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 16강전에서 전지희(맨 왼쪽)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여자 탁구대표팀 오광헌 감독(오른쪽 3번째)이 2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 16강전에서 전지희(맨 왼쪽)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비록 세계선수권 여정은 마무리됐지만, 여자 탁구대표팀 전지희(32·미래에셋증권)와 오광헌(53) 감독의 '케미스트리'는 빛이 났다.

전지희와 신유빈(20·대한항공), 이시온(28·삼성생명), 윤효빈(26·미래에셋증권), 이은혜(29·대한항공)로 구성된 여자 탁구대표팀은 22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본선 토너먼트 8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 중국을 상대로 매치 스코어 0-3(0-3 0-3 0-3)으로 패배했다.



이로써 여자 대표팀의 부산세계탁구선수권 여정은 이날로 마무리됐다. 세계랭킹 5위의 여자 팀은 대회 첫날인 16일 열린 이탈리아와 첫 경기에서 매치 스코어 3-0으로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17일 말레이시아전(3-0), 18일 푸에르토리코전(3-1), 그리고 19일 쿠바전(3-0)까지 조별예선을 4전 전승으로 통과하며 무난하게 16강 직행을 확정했다.

이어 21일 오후 5시에 열린 세계랭킹 14위 브라질과 16강전에서도 매치 스코어 3-1(2-3 3-0 3-0 3-0) 승리를 거두며 상위 라운드에 진출했다. 이렇게 되면서 한국은 8강 진출팀에게 주어지는 2024 파리 올림픽 단체전 출전 티켓을 얻어낼 수 있었다.



전지희와 이시온, 신유빈(왼쪽부터)가 22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8강전에서 출격 준비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전지희와 이시온, 신유빈(왼쪽부터)가 22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8강전에서 출격 준비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8강전에서 이시온(세계랭킹 44위)-전지희(21위)-신유빈(8위)의 순서로 매치업을 구성한 한국은 쑨잉샤(세계랭킹 1위)-첸멍(3위)-왕위디(2위)라는 '우주최강' 라인업과 맞붙어야 했다. 이전 경기들과는 달리 첫 주자로 나선 이시온은 초반 세계최강 쑨잉샤의 까다로운 서브에 흔들리면서 1세트를 1-11로 완패했다. 2세트 들어 추격의 의지를 드러내며 연속 3득점을 기록했던 그는 나아진 경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3세트 들어 구석을 찌르는 공격으로 선취점을 얻고도 연달아 11점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이시온은 세트 스코어 0-3으로 물러났다.

이어 출격한 맏언니 전지희는 과감한 공격을 바탕으로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1세트를 5-11로 진 전지희는 2세트에서는 첸멍의 좌우 공격에 흔들리면서도 격차가 벌어지지 않고 곧잘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3세트에는 3-0으로 리드하며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마무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전지희마저 스윕패를 당했다.

한국의 마지막 주자는 전날 오 감독이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신유빈이었다. 그는 앞선 푸에르토리코와 예선전, 그리고 브라질과 16강전에서 2연패를 당한 걸 만회하려는 듯 1세트 초반부터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줬다. 하지만 역시나 1, 2세트를 내주며 한국은 벼랑 끝에 몰렸다. 신유빈은 3세트 초반 0-4로 밀리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그래도 에이스답게 악착같이 추격했고, 이번 게임에서 처음으로 게임 포인트(10-9)에 도달했다. 하지만 왕위디는 듀스를 만든 후 12-10으로 매치를 끝내면서 한국은 결국 패배를 확정했다.


여자 탁구대표팀 신유빈과 윤효빈, 이은혜, 오광헌 감독(오른쪽부터)이 22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8강전에서 이시온의 플레이를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여자 탁구대표팀 신유빈과 윤효빈, 이은혜, 오광헌 감독(오른쪽부터)이 22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본선 토너먼트 중국과 8강전에서 이시온의 플레이를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비록 한국은 8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지만, 대회 내내 환상의 호흡으로 '원팀'을 자랑했다.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벤치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뛰었고, 경기에 나오지 않는 선수들도 땀흘리며 활약하는 플레이어들을 응원했다. 오 감독은 지난 18일 푸에르토리코와 예선전 승리로 16강 직행이 확정된 후 "선수들 다섯 명 모두 똘똘 뭉쳐 한 팀으로 이뤄낸 성과다"고 칭찬했다.

누구 하나 졌다고 해서 경기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푸에르토리코전에서도 신유빈이 2단식을 0-3으로 내줬지만, 맏언니 전지희가 4매치에서 복수에 성공하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만들었다. 당시 전지희는 "지금은 단체전이지 개인전이 아니다. 3명이 함께 이기는 것이다. (신)유빈이 경기를 보면서 대책을 세웠고, (이)시온이도 이겨줘서 편한 마음으로 경기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가 이겼다"고 강조했다.

선수끼리의 케미만 좋은 게 아니다. 오 감독과 선수들의 관계 역시 돈독하다. 전 경기에 출전했던 이시온은 "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전)지희 언니랑 (신)유빈이가 있기 때문에 더 부담없이 플레이할 수 있었다. 또 (윤)효빈이랑 (이)은혜 언니가 열심히 응원해주고 힘 줘서 더 했던 것 같다. 오 감독님도 좋은 지도력으로 잘 끌고 가주셨다"며 감독을 포함한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오 감독은 항상 '원팀'을 강조했다. 그는 "팀이라는 게 재밌다. 어떤 선수를 밀었는데 나가서 질 수도 있고, 반대로 이길 수도 있다"며 "혼자만의 팀이 아니기 때문에 힘을 합쳐서 잘해보자고 했다"고 이야기했다.

여자 탁구대표팀 오광헌 감독이 20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토너먼트 대진표 추첨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여자 탁구대표팀 오광헌 감독이 20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토너먼트 대진표 추첨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오 감독은 선수들에게 미안한 부분도 있었다. 자신의 실수 아닌 실수로 중국과 일찍 만났다는 부분이었다. 이번 대회 토너먼트 대진 추첨은 1, 2번 시드인 1조와 2조 1위 팀이 대진표의 맨 위와 맨 아래 순번에 위치하고, 3, 4조 1위 팀이 다시 추첨에 따라 1, 2조 1위의 어느 한쪽 대진에 들어가는 순서로 진행됐다. 이후 5~8조 1위 팀들도 순서대로 추첨을 통해 양 갈래로 나눠졌다.

20일 열린 토너먼트 대진 추첨에서 오 감독은 '8번'을 뽑아 중국 아래 쪽 대진에 위치했다. 8강에서 중국을 만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그는 "지금까지 제가 추첨해서 다 잘 뽑았다. 그런데 20일에는 이상하게 안되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오 감독은 선수들에게도 "내 손목이 안 좋은 것 같다"며 자책했다고 한다. 그러자 전지희가 "아니다, 저희 랭킹 때문이다. 저희가 잘하겠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감동해 눈물이 나올 뻔했다"고 후일담을 밝혔다.

오 감독은 이제 전지희와 3년째 호흡을 맞춰보고 있다. 그는 "첫 해에는 전지희가 몸이 안 좋아서 정신적이나 기술적인 얘기를 해줬다. 작년(2023년)에는 본인이 가진 기술도 있고 마음도 통했다"고 돌아봤다. 실제로 전지희는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신유빈과 조를 이뤄 여자 복식 금메달을 따내는 소기의 성과를 보였다.

전지희.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전지희.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이제 오 감독과 전지희의 시선은 올림픽으로 향한다. 오 감독은 "전지희가 항상 해준 얘기가 있다. 중간에 문자로 '저도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감독님께 꼭 메달을 따서 선물하겠다'고 말했다"며 "그게 굉장히 고마워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전지희 본인 역시 22일 경기 후 "우리가 전부터 좀 더 잘해서 팀 랭킹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면 좀 더 높은 단계에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도 많이 아쉽다. 이제 올림픽인데 감독님이 (추첨)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우선은 각자 각자 랭킹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올림픽을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일단은 그 목표를 삼고 가겠다"고 말했다.

◆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한국 여자 탁구대표팀 경기 결과
* 괄호 안은 세트 스코어.

▶ 5조 조별예선
- 2월 16일 오후 5시 이탈리아전: 3-0 승리(3-0 3-0 3-1)
- 2월 17일 오후 5시 말레이시아전: 3-0 승리(3-0 3-0 3-0)
- 2월 18일 오후 1시 푸에르토리코전: 3-1 승리(3-0 0-3 3-1 3-1)
- 2월 19일 오후 8시 쿠바전: 3-0 승리(3-0 3-0 3-0)

▶ 토너먼트
- 2월 21일 오후 5시 16강 브라질전: 3-1 승리(2-3 3-0 3-0 3-0)
- 2월 22일 오후 5시 8강 중국전: 0-3 패배(0-3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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