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구해오면 성관계하겠다"는 경찰…'SNS 함정수사' 논란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19.04.0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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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실적 쌓기용 함정수사…무리한 '성관계 미끼', '정보원 불법 활용' 문제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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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마약 투약을 권하던 이가 있었다. ‘좋은 것 같이하며 놀자 돈도 받지 않겠다’던 그를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느 날 새벽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여 모텔로 만나러 갔다가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현행범으로 바로 잡혔다. 마약을 권하던 그는 알고 보니 경찰이었다”

전(前) 한겨레신문 기자 허모씨가 지난달 27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중 일부다. 그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지난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0만원을 선고받았다.



페이스북 글 말미에서 허모씨는 “경찰에게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것은, 더 이상 제게 익명으로 접근해 마약을 권하지 말아주십시오. 지옥같은 감정의 흔들림을 벼랑 끝에서 다시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마약 중독자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라며 경찰의 함정수사에 대해 재차 언급했다.

허모씨 사례와 같이 경찰과 검찰은 마약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함정 수사기법을 계속 써 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위법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법원 "함정수사, 범의유발형 '위법' 기회제공형 '적법'"

대법원도 지난 2004년 판결에서 처음으로 마약 함정수사의 위법성을 인정하기도 했다.(2004도1066) 피고인들이 필로폰 매수의사가 없었지만 검찰이 정보원을 통해 검찰수사에 필요한 필로폰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중국에서 필로폰을 밀수하다 적발된 사건이다. 피고인들은 위법한 함정수사임을 주장했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함정수사에 의해 범의(犯意)가 유발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본 2심에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마약 함정수사의 위법성을 처음 인정했던 이 판결은 법학 교과서에 중요판례로 실릴만큼 큰 의미가 있었다. 수십 년간 마약 함정수사가 관행처럼 계속되던 상황에서 ‘범죄의도가 없던 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적극 권유를 통한 범죄 유발과 실행 유도는 위법’이란 기준을 명확히 했다.

지난 2015년에도 대법원은 필로폰 투약혐의로 수사를 받던 강모씨가 자신에 대한 선처를 바라고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정모씨에게 필로폰 구매를 의뢰하고 거래자금까지 수사기관이 제공한 경우, 위법한 함정수사라고 판단했다. 필로폰 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된 정모씨는 이 판결에서 강씨에게 필로폰을 제공한 혐의에 대해선 일부 무죄를 인정받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 함정수사는 허모씨 사례처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경우다.

아직까지 법원은 수사기관이 SNS나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마약을 같이 할 사람을 찾는 것처럼 속인 뒤 이를 보고 찾아오는 경우는 ‘기회제공형’으로 적법한 함정수사로 인정한다. 위법한 '범의유발형'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마약 구해오면 성관계하겠다"는 경찰…'SNS 함정수사' 논란
◇'성관계' 미끼로 마약사범 만드는 수사기관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남성 경찰관이 채팅을 통해 '여성'인 척 하며 ‘대마초를 구해오면 성관계를 하겠다’고 속인 함정수사에 넘어가 대마초를 구매하다 잡힌 대학생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A씨는 “성관계를 해주겠다고 해 구매했다”며 “함정수사에 의존한 불법”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범죄자에게 개인적 친밀관계를 이용해 심리적 압박이나 위협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유혹 또는 범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사를 벌일 경우만 함정수사라 본다”고 판시했다. 채팅을 통해 대마초를 구해오라는 유인책을 쓴 정도는 위법한 함정수사가 아니란 판단이다.

결국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선 경찰의 SNS 등을 통한 함정수사는 웬만해서 위법 수사가 되지 않는다. 법원에서 ‘범죄의도 유발형’ 함정수사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의 동반 투약자를 구하는 게시글이나 다이렉트메시지(DM), 채팅 등을 통한 마약구매나 투약유도 등이 적법한 수사방법이란 게 현재까지 법원의 태도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런 수사기관의 마약 함정수사가 범죄유발과 기회제공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마약사범을 쉽게 잡아들이는 실적쌓기에는 좋겠지만 권할만한 방법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필우 변호사(입법발전소)는 "마약 수사는 함정수사기법이 널리 쓰일 수밖에 없는 면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마약을 권하는 방법으로 범죄를 유발한 경우에는 위법한 수사"라며 "경험없는 초범들에게까지 적극적으로 함정수사로 투약기회를 제공하면서까지 잡아들이는 건 기회제공과 범의유발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사기관이 SNS 등에서 ‘성관계’를 미끼로 마약과 결부시키고 있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위 대학생 A씨 사례와 같이 마약 자체를 위한 범행이 아닌 성관계를 위한 범행이 있을 수 있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관계 미끼에 넘어가 마약을 구하려던 초범도 상당수 적발되고 있는 점에서 '성관계 미끼'는 부적절한 함정수사 방법이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마약투약·매매 등이 적발된 피의자들을 정보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함정수사 과정에서 불법성이 있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텔레그램 등을 활용한 미끼던지기 수법에서 경찰이 이미 잡아들인 투약자들에게 '자동삭제'기능을 써서 흔적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투약권유를 하도록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원이 먼저 수사대상자에게 투약권유를 한 부분은 텔레그램 채팅창에 남지 않게돼 수사대상자가 먼저 마약구매를 원한 것처럼 연출되는 식이다. 사실상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면서도 '기회제공형'으로 외형을 갖추는 셈이다.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마약사건의 경우에 소위 공적이 양형에 반영돼 이미 잡힌 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정보원 노릇을 하며 함정수사에 참여해 형량을 줄이려고 한다”며 “그 과정에서 상당히 불법적인 수사가 진행되거나, 탈법적인 부분이 있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제보에 의하여 진행되는 경우에는 위법한 증거가 수집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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