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3만弗 시대 노사관계, 광주형일자리에 거는 기대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19.02.2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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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3만불 시대, 한국경제의 과제(上)]③ 연공서열 따라 연봉 높아지는 호봉제 넘어 직무급제 마중물...기득권 노조 반발 이겨내야

편집자주 선진국의 조건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진입과 동시에 주 52시간 근무시간제 정착 등으로 국민의 삶에 큰 변화가 감지된다, 수소, AI, 공유경제의 확산으로 기업들도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혁신을 요구받는다. 정부 역시 새로운 경제 환경에 걸맞은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을 점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서 지역특성화 고교생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기존 완성차업체 임금의 절반 수준의 적정임금을 유지하는 대신 정부와 지자체가 주택, 교육지원 등을 통해 소득을 보전해주는 노사상생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다. /사진=뉴스1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서 지역특성화 고교생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기존 완성차업체 임금의 절반 수준의 적정임금을 유지하는 대신 정부와 지자체가 주택, 교육지원 등을 통해 소득을 보전해주는 노사상생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다. /사진=뉴스1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손꼽혀온 것 중 하나는 구시대적 노사관계다. 정규직 노조의 고임금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에게 돌아갈 과실을 빼앗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규고용 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광주형일자리는 이 같은 악습을 극복하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맞이하기 위한 대안으로 꼽힌다.

광주형일자리는 독일의 아우토5000모델을 차용했다.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에서 불황시기 신규직원 5000명을 채용하는 대신 기존 임금보다 20% 낮춘 월급 5000마르크를 지급한 게 원조다.



광주형일자리는 광주시가 사업장 최대주주, 현대차가 2대주주로 참여해 주 44시간 기준 35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한다. 대신 낮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주거, 문화, 복지시설 등을 제공한다.

대기업인 현대자동차 입장에서는 직원 평균연봉이 9000만원에 달하는 고비용 구조를 타개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의 고질적 문제로 꼽혀왔던 호봉제를 극복하는 대안으로도 꼽힌다.



고연봉 근로자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녀양육, 주거 등에 들어가는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주형일자리는 연봉을 상대적으로 적게 책정하는 대신 공공복지 영역의 문제를 해결해줘 근로자의 지출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소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격차, 호봉제를 해소하고 역할과 능력에 따라 급여를 받는 직무급제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구직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광주형일자리 임금모델은 연공서열에 따른 같은 직장 내 근로자간 격차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간 임금 지불능력의 차이도 상당부분 완화할 수 있다. 저임금근로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공복지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청년들이 기피하는 중소기업 취업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광주시는 공공복지를 위한 세금을 투입하는 대신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통한 경제효과를 노린다. 1000여명의 직접고용과 함께 주변 간접고용까지 합치면 1만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뚜렷한 산업 성장세가 없던 지역사회에 단비 같은 신규고용이다.


아울러 광주형일자리는 노사대립을 줄이는 기능도 한다. 현대차는 기술과 공장운영 노하우를 전수하지만 경영권이 없는 2대주주라 근로자와 직접 협상할 일이 적다. 노사관계는 지역의 주체들이 참여하는 노사민정협의회가 맡는다. 임금협상 역시 노사대립이 아닌, 지역사회의 중지를 모아 처리할 수 있다.

이처럼 △기업의 고비용 저효율구조 해소 △안정적 신규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노사대립 완화 등의 효과 때문에 광주형일자리가 주목 받는다. 지역경제가 침체된 전북 군산, 경북 구미, 대구 등의 지자체도 이를 따라갈 조짐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 초대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인 이용섭 광주시장이 "나라를 구하고 민주주의를 이뤘던 광주시민들이 이제는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책무를 수행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게 이 때문이다.

노사정 대부분이 환영하는 광주형일자리에 반대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기존 현대차 정규직 노조다.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일자리를 '사기'로 규정하고 "현대차가 광주형일자리 같은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생산현장에 신경쓸 수는 없다"며 "광주형일자리는 문 대통령이 기업 손을 비틀어 도장을 찍게 만들고 수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전형적인 정경유착"이라고 비판한다.

기존 노조의 반대는 광주형일자리에서 시작된 낮은 초봉, 지역사회가 노사갈등에 개입하는 형태가 다른 사업장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서 나온 위기의식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노조가 그동안 사측만을 상대로 싸우며 요구조건을 관철해왔다면, 이제는 쟁의행위시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반발까지 떠안아야된다는 부담 때문이다.

결국 광주형일자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존 노조의 반발을 이겨내고, 소모적인 노사갈등을 지역사회의 힘으로 잠재우는 게 관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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