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인도네시아 화교 강간살해 사건. /사진=위키커먼스
1998년 5월 군부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에 대한 퇴진 촉구 항의가 화교 폭동으로 번졌다. (☞1998년의 기억… '대통령'이나 '장관'이 될 수 없는 자들 [이재은의 그 나라, 인도네시아 그리고 화교 ①] 참고) 이 폭동으로 수도 자카르타에서만 5000여개의 화교 소유 공장과 집이 불태워졌고, 170여명의 화교 여성들이 성폭행당했으며, 1200여명의 화교가 살해당했다. 수라바야, 빨렘방, 메단 등지에서는 더욱 격렬한 폭동과, 강간살해가 자행됐다. 이 사건에 대해 비극이 아니라고 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폭동 속 인종청소(제노사이드)의 전형적인 모습인 '여성 강간'이 다시금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국 장수성 난징에 위치한 난징대학살 추모관에 생존자들의 모습이 걸려 있다. /사진=위키커먼스
그렇다면 전쟁이나 폭동 상황 속 패전국·패전민족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전 브라운 밀러는 이와 맞아떨어지는 사례도 제시했다. 콩고와 벨기에 여성들이 당한 성폭행 사건이다. 콩고 흑인 여성들은 벨기에 식민지 시절(1885~1908년) 벨기에 남성들에게 빈번하게 성폭행당했다. 이후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거쳐1960년 7월 자유 국가가 되자, 콩고 남성들은 독립해방의 기쁨을 표출하고 싶었다. 그 방법은 콩고 전역에 남아 있던 벨기에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이었다.
단순히 승리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만 여성에 대한 성폭행을 하는 건 아니다. 슬프지만, 이는 제노사이드의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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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당한 여성은 본인의 민족에서 일종의 '걸레'라는 낙인이 씌워져 사회에서 제거되거나 추방되는 일이 잦았다. 성폭행당한 여성은 주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보였고, 여성의 가족은 이 같은 기억을 잊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곤 했다. 즉 성폭행은, 여성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파괴하며 민족 공동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파괴했다. 여기에 여성이 혼혈 아이를 임신할 경우 여성의 민족성이 또 한번 희석되는 효과도 있었다. 태어난 아이는 성폭행 가해 민족의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또 다시 인종 청소가 이뤄진다.
보스니아의 독립 선언으로 시작된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 때도 그랬다. 당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에서는 세 개의 인구 집단, 즉 보스니아인으로 불리는 무슬림(이슬람교), 보스니아 내의 세르비아인(세르비아 정교)과 크로아티아인(가톨릭) 간에 격한 영역 다툼이 일었다. 세르비아와 가까운 보스니아 동부(스레브레니차, 사라예보 등)에서는 특히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인 간의 갈등이 심했다.
2016년 7월11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스레브레니차 포토차리의 추모묘지에서 1995년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 당시 생존한 무슬림 여인이 친지의 묘 곁에서 애도를 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학교, 교회 등에 가임기 여성으로 판단되는 무슬림 여성(10~60세 사이)을 한 곳에 몰아두고 집단 강간을 해서 혼혈 아이를 임신시켰다. 성폭행을 통해 임신한 여성들이 낙태하지 못하게 감금했다. 이는 무슬림 말살에 효과적이었다. 무슬림 여성들은 명예를 더럽혔다며 가족, 사회로부터 유리됐고 아이들은 세르비아계 피를 이어받음으로써 무슬림계 민족성이 흐려졌다.
르완다에서 1994년 일어난 투치족 등 인종청소 대학살을 잊지 말자는 4월 7일의 추모행진에 나선 키갈리 시민들. 2018.04.07. /사진=뉴시스, 신화
이처럼 여성이 전리품으로 취급되는 현상이나, 분노 표출의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데 대해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전 편집장이자 소설가인 정미경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혐오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하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희화화(운전 못하는 김여사 등)하다가, 점점 조롱하고 낙인을 찍는다. (김치년, 창년 등) 이렇게 언어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던 게 조건과 기회가 되면 개별적 폭력과 구조적인 폭력으로 나아간다. 그 끝엔 제노사이드가 있다. 여성을 집단 강간해서 죽이는."
사실 1998년 인도네시아 화교 강간살해 사건은 화교 몰살을 바라 자행됐다기보다는 화교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자유롭게 표출하도록 함으로써 부패한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려고 한 의도가 더욱 컸다.(군복 차림으로 화교 여성 1명을 성폭행 할 때마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군부는 6원의 장려금을 지불했다고 한다. 즉 당국의 막후조정과 사주 그리고 격려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제노사이드의 사례로 보지 않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 사건과 여타 학살의 사례를 짚어보고 왜 늘 여성 강간이 역사 한켠을 차지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되풀이됐는지 짚어볼 수 있었다.
참고문헌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오월의봄, 수전 브라운 밀러
인도네시아 화교사회 형성과 반화교폭동에 대한 연구, 중국인문학회, 홍재현
식민형 ‘중간시민’에서 동화형 ‘유사시민’으로, 신명직
동남아 화인디아스포라의 현지사회 정착과 화인정책,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 김혜련
화교에서 화인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박경태
인도네시아의 화교와 화교 자본, 지역연구, 신윤환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바다출판사, 신시아 인로
☞[이재은의 그 나라, 베트남 그리고 국제결혼 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