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위,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 (12원 ▼26 -68.4%)을 파산으로 내몬 외부 요소다. 여기에 정부의 구조조정 실책, 한진그룹과 채권단간 '책임 떠넘기기'로 인해 해운업계 최고의 영업망과 인력을 갖췄던 이 해운사는 오는 17일 법원의 파산 선고를 받아들게 됐다.
지난해 초만 해도 해운산업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인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15,850원 ▼170 -1.06%)을 합병, 수익성 위주 구조조정을 하려 했다. 그러나 양사의 반대 등에 부딪혀 실천하지 못했다.
법정관리 개시 이후 영업망 붕괴는 한순간이었다. 법정관리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싱가포르항에서 '한진로마호'가 압류됐고 얼라이언스 퇴출, 물류대란, 화주이탈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해운업의 특성상 법정관리가 곧 파산과 동의어였던 셈이다.
또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한진해운 및 해운 관련 직종 종사자 3000여명이 실직자로 남게 됐다.
이제 한진해운에 남은 것은 '빚잔치'다.
이 시각 인기 뉴스
3일 법원에 따르면, 한진해운에 대한 채권 신고액만 31조5005억원이다. 상거래채권(17조6742억원), 대여금채권(9조632억원), 회사채(1조4110억원), 특수관계인채권(4454억원) 순서이며 금융리스채권, 보증채권, 보증금채권, 구상채권, 담보신탁채권, 미발생구상채권 등도 있다.
총 채권신고액 가운데 채무자(한진해운)가 시인한 금액은 3조4185억원, 부인액은 28조4626억원이다. 이날 기준 채권자들이 "채권의 존재와 액수를 확정해달라"며 법원에 낸 조사확정 신청은 약 800건이다.
법원은 "총 채권액 중 얼마나 인정될지는 예측 불가"라고 전했다. 삼일회계법인이 한진해운의 청산가치(기업을 청산할 경우 채권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를 1조7900억원으로 추산했고, 현재까지 시인액이 이보다 더 많은 3조4185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채권자들이 회수할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산 선고 이후 파산관재인(변호사)은 남은 자산을 팔고 매각 금액을 법률상 우선순위에 따라 채권자들에게 나눠준다. 임금과 공익채권, 조세, 담보채권, 파산 절차에 드는 비용 등을 우선 갚고, 남은 금액을 우선순위에 따라 채권자들에게 배당하는 방식이다.
한편, 한진해운의 파산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는 게 해운업계의 목소리다. 한진해운의 성장은 '수출주도형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선친인 고 조중훈 창업주가 '해운왕'을 꿈꾸며 1967년 7월 자본금 2억원으로 세운 대진해운이 뿌리였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표 수출 기업들을 주요 화주로 확보했다.
1972년 부산과 일본 고베 간에 컨테이너 정기 항로를 개설했고, 1973년 1차 오일 쇼크 이후 대진해운은 문을 닫았지만 1977년 한진해운을 다시 설립했다.
1978년 2차 오일쇼크 이후 물동량 감소, 운임 폭락 등 불황이 있었으나 고 조중훈 창업주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당시 수석부사장)은 한진해운 경영을 일정기간 대한항공에 위탁하는 등 방식을 통해 한진해운을 다시 살렸다.
항공업계의 정시운항을 도입, 화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재건됐고 1987년 세계 15위, 1997년 세계 7위 해운사로 도약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한국 해운업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한진해운은 40년 역사에서 수차례 어려움을 극복해온 저력을 갖고 있어 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