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처럼 여성 경영 참여 당연해져야…지금은 과도기"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 2021.04.19 04:21

[금투업계 유리천장, 이대로 괜찮나]

편집자주 | 온 국민이 주식을 하는 시대다. 유례없는 '동학개미운동'으로 금융투자업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그러나 유독 개선이 느린 분야가 있다. 바로 유리천장이다. 여성 주식 투자자들은 대폭 늘었지만, 이들을 위한 여성 롤모델은 부족하다. 금융투자업계의 여성 직원 비율 증가에도 투자전문가로 불릴만한 증권업계 고위 임원은 대부분 남성이다. 금융권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주 원인으로 꼽히지만, 국내 금융권은 해외와 비교해도 유독 여성 리더가 부족하다. 머니투데이는 금융투자업계 유리천장의 현주소와 최근 일고 있는 변화의 물결에 대해 조명해본다.

"1920년대나 되어서야 여성 참정권이 보장됐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하면 믿기 힘들다. 여성의 경영 참여도 마찬가지다. 여성 참정권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아직도 특이한 일인 것처럼 회자되는 게 보편화가 안 됐다는 말이다."

2002년. 이미현 한국거래소 부장이 입사했을 때만 하더라도 거래소에는 여성 과장이 없었다. 변호사로 로펌(법무법인 광장)에서 근무하던 이 부장은 법무팀 연구위원으로 경력 채용되며 당시 유일한 과장급 여성이 됐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 부장은 코스피·코스닥 상장, 코넥스매매, 기획부 등을 두루 거치고 코스닥시장본부 상장부장에 선임되며 '증권업계 베테랑'이 됐다. 그새 금융투자업계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거래소만 하더라도 여성 직원 비율이 4분의 1 남짓이다. 2019년에는 채현주 코스닥시장본부 상무가 임원으로 발탁되며 63년 만에 첫 여성 임원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성 고위직 비율은 여전히 낮다. 마흔 명이 넘는 한국거래소 부서장 중 여성은 세 명에 불과하다.

약 20여 년간 여의도 금융가의 변천사를 지켜봤다는 이미현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부장. 머니투데이는 지난 6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서 이미현 부장을 만나 금융투자업계의 유리천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미현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부장과의 일문일답.


/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사진=.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지금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듯하다. 여성 직원 비율은 어땠는지.
▶제가 과장급으로 들어왔는데, 그때만 해도 거래소에 여성 과장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율은 25% 가까이 되고, 보직자 비율도 10%가 넘는다. 이전보다 훨씬 늘어난 것이다. 여성 근로자의 근무 환경이 개선된 점도 있고, 채용도 많이 늘었다.

-출산·육아 관련 사내 복지정책도 많이 바뀌었나.
▶예전에는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2004년 무렵 출산을 했는데, 출산휴가 이후 아이를 시부모님께 부탁드리고 부산 본사로 내려간 기억이 있다. 결국 육아휴직을 한 번도 못 썼다. 요즘은 여성 직원들은 다들 쓰고,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사용도 생기고 있다. 자녀 양육이 개인의 책임보다는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듯하다.

-거래소는 본사가 부산이라 순환근무를 해야 하는 만큼 육아의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요새는 대부분 맞벌이라 같이 내려갈 수 있으면 좋지만, 남편도 어렵다면 주말부부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저 같은 경우도 3년 정도는 지방과 서울을 왔다 갔다 했다. 지금도 상황이 아마 비슷할 거다.

-해외 등과 비교할 때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여성 임원 비율은 유독 적은 편이다. 지난해 기준 10대 증권사의 여성 임원 비율은 5.14%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로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증권업계뿐만 아니라 타 업계나 전체 상장사를 보더라도 고위직 여성 보직자가 과거에는 워낙 적었다. 승진을 시키려면 직급이 어느 정도 돼야 하는데, 인재 풀이 적지 않았나 싶다.

특히 IB(투자은행) 부문은 딜소싱하려면 술자리도 많고 영업적인 측면이 강해서 어려움이 있었을 듯하다.


-내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특정 성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여성 이사 의무화 제도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강제적으로 하는 게 거부감을 줄 순 있지만, 방향은 맞다고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우대해준다는 개념이 아니다. 여성도 동등하게 경영에 참여해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다양한 시각으로 기여하는 기회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로 이해되면 좋겠다.


1920년대나 되어서야 여성 참정권이 보장됐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다. 여성의 기업 경영 참여도 마찬가지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아직도 특이한 일인 것처럼 회자되는 것은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게 갑자기 어느 날 보편화하자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유럽의 여성 임원 비율도 대략 20%인데, 노르웨이 등 북유럽은 40%나 된다. 이들 국가가 유독 높은 이유는 이번 개정안과 비슷한 여성 이사 할당제의 효과다. 사회적 흐름에 변화를 주려면 어느 정도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경제학자 피터 드러커가 반세기 전에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고 말했다는데, 생각해보면 왜 한참 뒤인 21세기를 언급했을까. 그만큼 여성 리더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거다. 지금도 과도기적인 단계에 있다. 여성에 대한 균등한 기회 보장과 경영 참여가 보편화하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경영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같은 움직임이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에 영향을 줄까.
▶모두 서로 연결되는 사안이다. 기업이 그동안 무관심했던 영역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한 축이 근로자 비율·지배구조에 있어서의 성비다. 이제는 기업도 가치를 높이려면 사회적 책임을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추세다.

ESG 경영이 기업이 지키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환경 규제를 지키거나 성비를 맞추기 위해 채용을 늘리다 보면 기업의 희생도 따른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투자자가 관심을 두고, 시장의 가치 상향 기준이 된다는 트렌드가 형성되는 듯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삽화_tom_주식_투자_부동산_증시_목돈_갈림길 /사진=김현정디자이너

-최근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등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이 해외 증시 진출이 화제가 되는 상황이다. 올해부터 기술특례 평가 항목 등이 바뀌며 이전보다 상장 심사가 까다로워졌다는 말이 있는데, 기업들의 해외 상장 가속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국내 기업이 미국 증시에서 상장해 성공을 거둔 것은 박수 칠 만한 일이다. 한국 기업의 저변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쿠팡의 사례를 보고 해외 증시로 가겠다는 다른 기업들에 대한 기사도 많이 나온다. 2000년대 IT(정보기술) 버블 때도 나스닥 상장 붐이 있었다. 두루넷, 하나로텔레콤, 웹젠 등이 진출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유지비용이 너무 과하고 거래가 많이 안 돼서 상장 폐지됐다. 기업별로는 미국 시장이 과연 맞는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상장 비용만 해도 국내가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코스닥 시장은 테슬라 요건(이익미실현)·기술특례 상장 등 혁신기업이 상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충분히 보완된 시장이다. 특례 상장 기업만 해도 156개(기술특례·이익미실현·소부장 특례 합산)다. 기업 수도 1495개에 달해 조만간 1500개사를 돌파할 예정이며, 시총도 약 417조원이다. 이정도 규모로 유지되는 신시장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만큼 코스닥은 역동적인 시장이다. 전 세계에서 나스닥 시장 다음으로 성공한 신시장이 코스닥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장 시장은 결국 기업이 선택하는 것이다. 기업의 특성에 얼마나 그 시장이 잘 맞는지 합리적으로 고려해서 선택했으면 좋겠다. 특히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등 미래성장 가치가 높은 혁신형 기업은 코스닥시장의 DNA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만큼, 관심을 많이 가져줬으면 한다.

-올해 코스닥시장본부 상장부장으로서 추진하는 사업이나 목표가 있다면.
▶올해도 코스닥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혁신기업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다만 최근 시총 1조 단독 요건이 코스피에 도입되면서 혁신형 유니콘 기업이 코스닥보다 코스피를 선호한다는 시장의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코스닥이 20년 만에 천스닥을 넘어서며 재조명을 받고 있는 만큼 유니콘 기업에 대한 상장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다각도로 추진해 코스닥 활성화의 추세가 지속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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