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김우진(25)씨는 실험실 창업 기업에 취업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공대생들 사이에서 ‘핫’한 체성분분석기업 ‘인바디’의 경영 철학과 방식이 마음에 들어 면접을 보러왔다고 했다. 인바디는 창사 20여년 만에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을 통해 체성분 분석기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한 헬스케어기업이다. 카이스트(KAIST)에서 기계공학 석사, 미국 유타대에서 생체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공학도 출신 차기철 씨가 대학 연구실에서 갈고 닦은 기술로 창업한 회사다. 김 씨는 “인바디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 주제를 정해 그 일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과제업무제도’가 있다”며 “연구비 지원도 빵빵하고, 대학 졸업 후에도 내가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대학 실험실에서 쌓은 지식과 노하우를 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 개발할 수 있는 실험실 창업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공대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19일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린 '2019 청년 과학기술인 일자리 박람회'에는 KA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4대 과학기술원에서 배출한 창업기업 20곳이 참가했다. 대학 실험실에 잠자던 기술 씨앗들을 싹을 틔워 이제는 중소·중견기업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는 실험실 창업 기업들이다.
의료·산업기기 영상 전문업체 뷰웍스에도 일찌감치 면접을 보기 위해 온 취업준비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곳에 지원서를 넣은 취업준비생 김남운(26)씨는 “광학 분야를 전공하면서 현재 국내 영상의료기기 업체들이 보유한 기술력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며 “시장을 확대할 어떤 트리거(기폭제)가 있다면 외산업체보다 훨씬 더 크고 빠르게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국내 중소기업 처음으로 지난해 5월 자율주행임시운행허가를 획득한 ‘소네트’는 이번 박람회에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할 인재를 뽑을 계획이다. 이 회사는 DGIST 연구원 창업 1호 업체이다. 손준우 DGIST 동반진단의료기술융합연구실 책임연구원이 대표를 맡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5년간 총 1738개의 실험실 창업 기업이 설립됐다. 특히 지난해 총 442개 기업이 설립돼 1274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허재용 과기정통부 미래인재양성과장은 “실험실 창업 지원을 확대해 시스템반도체 등 혁신 분야 창업기업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과학기술원들은 대학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한 고급 과학기술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다양한 지원책을 준비중이다. KAIST 김보원 기획처장은 “4대 과기원이 모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술혁신 통합 자문센터’를 만들 계획”이라며 “실험실 창업 기업들이 중소·중견 단계를 넘어 대기업 입구까지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DGIST 한상철 산학협력단장은 “R&D 지식 자산 관리 차원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마케팅과 세일즈”라며 “실험실 창업 기업들의 지식재산을 전국 단위로 거래할 수 있는 웹 기반 플랫폼을 내달 중순 개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단장은 이를 통해 실험실 창업 기업들이 내놓는 연구성과 및 특허가 저평가되지 않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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