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초월··· 세상의 근원을 담다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3.12.11 06:00

'히로시 스기모토-사유하는 사진'展 ··· 삼성미술관 리움

황해, 제주, 1992, Gelatin silver print, 111.9×149.2cm ⓒ Hiroshi Sugimoto
먹먹함이 밀려든다. 어느 순간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을 내려놓고 수평선을 중심으로 나뉜 한없이 고요한 바다 풍경 앞에서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게 될 뿐이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히로시 스기모토-사유하는 사진' 전시는 관람객에게 그렇게 시간여행을 선사한다.

"사진은 제게 타임머신과 같습니다. 사진을 통해 인간 역사의 여러 순간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거든요. 바다풍경은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태초의 모습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죠."

현대 사진계의 거장으로 통하는 히로시 스키모토(65)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실제인가 아니면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모습은 장시간 노출 기법을 사용해 풍경 사진이라기 보단 추상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바람·안개·수증기 등 기후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미묘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출신으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인간 삶과 의식의 기원을 탐구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또 19세기 대형 카메라와 전통적 인화방식의 명맥을 유지하는 장인적인 기술 사진을 찍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사진은 몽환적이면서도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준다. 화려한 색감을 배제한 흑백사진들이다. 그는 "흑백사진이긴 하지만, 흰색부터 검은색에 이르는 중간 과정에 수백 가지 톤과 변화가 있다"며 "따라서 제 사진 작업은 '모노톤'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컬러 사진은 화학적인 느낌인 반면, 흑백사진에서는 진정성 느껴져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설명했다.


16세기 궁정화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 초상화를 토대로 제작한 밀랍조각을 촬영한 사진은 진실성에 대한 믿음을 역이용해 보는 사람이 스스로 진실과 허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마치 과학 실험실을 보는 듯 착각하게 하는 '번개 치는 들판' 연작은 거대한 번개 드로잉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교토의 절에서 촬영한 1000개의 불상들이 박스 공간 안에서 3개 면을 가득 채우며 점차 100만 개로 증식하는 영상작품 '가속하는 불상'도 독특한 작업이다. 관람객들은 문명의 속도를 되돌아보며 상상할 수 없는 제 3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내년 3월 23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작가의 대표적인 사진 연작 및 최근의 조각설치, 영상을 포함하는 49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오는 19일 오후 2시에는 마미 가타오카 모리미술관 학예연구실장과 신수진 사진심리학자의 강연도 열린다. 전시설명은 화~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에 진행된다. 입장료는 일반 7000원, 초중고생 4000원. 월요일 휴관. 문의 (02)2014-6900.

자신의 작품 '번개 치는 들판 구성' 앞에 선 히로시 스기모토 /사진제공=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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